심연 갈망한 영혼 별에 담기다
고흐의 편지·장식품 등 인기
‘고흐 굿즈’ 탄생 하나의 문화
수백 통 편지에 담긴 삶의 애환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갈증
눈에 담긴 영혼, 내면 관심
37세 절명, 짧지만 숭고한 삶

▲ 빈센트 반 고흐 작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작 ‘별이 빛나는 밤’
 

지난 10월 첫 주말에 춘천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빈센트 반 고흐’.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뮤지컬로 재현한 이 작품은 뜻밖에도 국내 작가에 의해 각본이 쓰이고 공연된 창작뮤지컬이다.개인적으로 고흐를 좋아하는 나에게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공연 소식이었다.국산 고흐 뮤지컬이라니! 침대와 작은 테이블,의자 두어 개 정도의 작은 소품들,배우 두 명에 의지해 완성된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기보다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한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태풍이 몰아치는 주말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차분히 메워졌고 박수 소리는 뜨거웠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장 많은 복제품이 팔리는 화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그림만이 아니었다.그가 쓴 편지를 번역한 ‘반 고흐,영혼의 편지’는 스테디셀러가 되어 꾸준히 팔리고 있고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장식품과 팬시 소품으로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다.일종의 ‘고흐 굿즈’(Gogh Goods)라고 부를 만하다.그러니 우리 문화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고흐의 작품은 달리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미술에 대해 말하기는 부족하다.다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고흐는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사람이다.고흐는 짧은 기간 다작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그가 썼다는 수백 통의 편지에 더 관심이 생긴다.그는 생전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고백하듯,고해성사를 하듯,때로는 고통을 호소하듯 쓰인 편지는 고흐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이해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흐가 쓴 대부분의 편지 수신인이었던 동생 테오와의 유대와 형제애는,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울림을 준다.
 

▲ ‘자화상’
▲ ‘자화상’

고흐를 생각할 때 가장 흡인력 있게 다가오는 지점은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다.우리에게는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고흐가 간절히 그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종종 동생에게 사람을 그리고 싶지만 모델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편지를 썼다.“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사람의 눈은,제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이라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반 고흐,영혼의 편지) 인간의 눈을 통해 영혼을 그려내고 싶었지만 모델을 구할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그는 종종 자기 자신을 그렸다.고흐가 그렸던 자신의 방,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침대와 몇 점의 그림이 전부인 남루한 방에 걸린 거울이 시선을 끄는 건 그런 이유다.자신을 그리기 위해 거울과 화폭을 부지런히 오갔을 그의 진지한 시선은 푸르고 붉은 붓질 사이에 걸려있다.그래서일까 고흐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은 눈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그의 처절한 갈망처럼 느껴진다.

삶에 대한 불안,연이은 사랑의 실패,궁핍한 삶,그림에 대한 갈구와 열망,결국 서른일곱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던 그의 삶은 숭고하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킨다.자살과 타살 논쟁이 여전히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죽음도 자꾸만 고흐를 되돌아보게 한다.그의 그림에 보이는 춤을 추듯,말을 걸어오듯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은 고흐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다.돈 맥클린은 1971년 ‘빈센트’(Vincent)라는 노래를 발표했다.우리에게는 ‘별이 빛나는 밤’(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유명한 노래는 이미 많은 유명 가수들이 앞 다투어 리메이크해서 불렀다.“별이 빛나는 밤,환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꽃들과 흐릿한 바이올렛 연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은 차이나블루빛 고흐의 눈동자에 담겨”있다는 가사는 그의 작품에 고요히 안착한다.

한때 고흐는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질문했다.“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그럴 때 묻곤 하지.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고흐는 별까지 가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어 콜레라,결석,결핵이 하늘까지 가게 해주는 천상의 운송수단이라면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편지를 맺었다.고흐는 별까지 날아가고 싶었던 것일까?그의 마지막 그림,너른 밀밭 위 짙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한 떼의 까마귀는 하늘 위의 또 다른 창공을 향하는 듯하다.고요한 정신과 마음이 담긴 예술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흔든다.고흐가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영혼이 담긴 사람의 눈,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기 다른 깊이의 눈빛으로 물든 계절은 찬란할 것 같다.단풍으로 물든 가을보다 더.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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