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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대처,단호하되 차분하게

박찬성 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 박찬성 변호사
▲ 박찬성 변호사
두 달 남짓이면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한다.참 많은 일들이 올 한해 우리 사회를 달궜다.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의 #미투와 안희정 전 지사 사건,멀리 또 가까이에서 잊을 만하면 들려오던 성희롱·성폭력 사건들.그 중 많은 것들이 우리 모두를 공분케 할 만한 소식들이지만 분노만으로 세상이 달라질 수는 없다.냉정히 생각해 보면,이제껏 우리는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관해서 충분히 섬세한 법적 규율체계를 가졌던 바가 없다.몇 가지만 보자.

첫째,‘저 사람이 말로써 나를 추행했어요.처벌해 주세요.’ 가 가능할까? ‘추행’이라는 말뜻을 생각하면 온갖 추한 행동 일체를 다 가리킬 것 같다.하지만 형사법에서 말하는 추행죄의 의미는 좀 다르다.거칠게 정리하면,추행죄에서의 ‘추행’이란 대체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졌거나 또는 만졌던 것에 준하는 신체접촉을 주로 의미한다고 해석된다.폭행·협박,즉 유형력의 행사를 범죄 요건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위에서 ‘해석된다’라고 썼다.놀랍게도 추행의 구체적인 뜻은 법에 적혀있지 않다.다만,법전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법원이 판례를 통해 해석·적용 사례를 축적해 온 결과,추행의 형사법적 의미가 위와 같이 정립되어 왔던 것이다.그러니 법에 쓰여 있는 문언 그 자체는 추행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올해 초 대법원은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었더라도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였음이 인정된다면 강제추행죄로 처벌 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다소 예외적인 새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하지만 근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법전에 쓰여 있는 ‘추행죄’가 우리에게 별 다른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 판결이 나오기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둘째,대학생이 다른 대학생에게 말과 행동으로 성적 굴욕감을 주었다.이는 법이 정하는 성희롱일까? 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적어도 이는 법에서 직접 정하고 있는 성희롱은 아니다.우리 법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성희롱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고용 등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성희롱만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성희롱 피해를 입은 것이더라도 이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도 없다.다만,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성희롱은 아니지만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일반 불법행위로서의 성적 언동에는 해당한다.

이런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그렇기 때문에 문제제기는 단호해야 하나,해법은 차분하게 모색해야 한다.#미투를 통해 드러난 눈물어린 목소리들이 또 한 번 더 거품처럼 사그라드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법제상의 기본적 사항에 대한 세세한 검토와 꼼꼼한 정비가 뒤따라야만 한다.법제도의 개선이 우리들 일반 시민들 개개인의 역할과 책임은 아닐지도 모른다.하지만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민주시민의 권장할 만한 덕목이 아닐까.성희롱·성폭력 없는 우리 강원을 향한 발걸음,#미투와 함께 이제 우리는 겨우 첫 걸음마를 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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