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고 좌절하고, 때로 길들여지기 바라는 ‘나’의 모습
일본 지브리애니메이션 마니아층 형성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
시간 지날수록 인기, 각종 굿즈 쏟아져
“ 외로워” 라며 깊은 내면 허기짐 고백
진짜 얼굴 가린 현대인으로 해석 가능

유강하의대중문화평론.jpg

이번 주,춘천에서 재즈 공연이 있었다.‘지브리 애니메이션 in Jazz’.주중에,그것도 점심시간에 열리는 공연이었는데도 제법 사람이 많았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의 재즈 편곡이 연주될 때는 가볍게 리듬을 타는 관객도 있었다.편안하고 익숙한 리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적어도 그 순간,일본 또는 일본스러움이라는 불호(不好)의 정서는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힘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이들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일본 콘텐츠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상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사실,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정도를 뛰어넘어 견고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수용력이 높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가운데서도 ‘이웃집 토토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았고 재개봉되어 관객들과 만나왔다.영화 속 주인공 가운데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는 ‘토토로’(이웃집 토토로)와 ‘가오나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꼽을 수 있다.이중에서도 가오나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불과 며칠 전 케이블TV에서 한 출연자가 가오나시 복장을 입고 나오기도 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가오나시는 오르골,손전등,저금통,USB,펜,핸드폰케이스 등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어져 소비되고 있었다.‘지브리 굿즈’가 아니라 ‘가오나시 굿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영화의 주인공도 아닌 캐릭터가 이토록 인기가 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
▲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

검은 망토에 핼러윈 마스크를 쓴 듯한 모습의 가오나시는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가오나시(顔なし)는 얼굴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표정 없는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텅 빈 몸의 가오나시는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그는 번화한 붉은 다리 위에 서 있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엉겁결에 신들의 나라에 들어선 치히로만이 그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줄 뿐이다.

도무지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었던 가오나시였지만,그가 사금을 만들어 뿌리자 사람들이 그의 앞에 굽실거리며 음식을 바치고 사금을 구걸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가오나시는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된다.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춤을 추고 앞다투어 음식을 바치지만 그들의 눈은 가오나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사금에 있다.사금을 바라는 사람들이 음식을 바치면 가오나시의 가면 아래로 붉고 커다란 입이 벌어지며 음식을 삼켜버린다.시끌벅적하게 움직이지만 서로의 욕망과 시선은 엇갈려 있다.가오나시의 작은 몸은 점점 비대해지지만 그의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사금 조각이 아니라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유일한 존재인 센(치히로)이 나타나자 가오나시는 예의 그 능력으로 사금 더미를 만들어 센의 앞에 들이댄다.사람들은 부러워서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정작 센은 필요하지 않다며 황금을 거절한다.그 순간 가오나시의 몸은 꿀렁거리며 균형을 잃는다.센이 떠나자 가오나시는 황금을 바라고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을 삼켜버린다.
 

▲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
▲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가오나시는 센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며 대욕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다.황금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센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가오나시는 센에게 말을 건다.“먹을 걸 줄까? 황금을 줄까? 원하는 게 뭐야? 나는 황금을 너에게만 주기로 했어” 센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가오나시의 욕망은 또 다시 좌절된다.결국 가오나시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허기의 근원을 고백한다.

“외로워”

얼굴 없는 가오나시는 현대인의 욕망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진짜 얼굴은 가려져 있고 검은 망토 아래로는 팔과 다리가,크고 붉은 입이 감추어져 있다.그 욕망은 부단히 요구하고 허기를 느낀다.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사람들의 환호 속에서도 느껴지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가오나시는 끝 모를 허기를 해소하기 위해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통째로 삼켜보지만,가오나시의 황금만 바라봤던 사람들은 가오나시의 몸속으로 흡수되지 않는다.결국 삼켜진 사람들은 다시 살아있는 채로 토해지고 만다.모든 걸 삼켰지만,아무 것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가오나시.다시 홀쭉해져 텅 빈 상태가 된 가오나시는 짧은 여행을 떠나는 센의 옆에 가만히 앉는다.곁에 앉고,나란히 걷고,함께 차를 마시는 ‘같이’는 가오나시를 고요히 길들인다.이제 가오나시는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먹고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신다.욕망은 그렇게 길들여질 수도 평화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가오나시는 얼굴 없이 존재하는 욕망이 어떻게 팽창하고,상처입고,길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다.다시,학생들의 백팩에 달려 흔들거리는 얼굴 없는 가오나시를 보고 있자니,우리 속에 내재된 저마다의 ‘나’가 흐릿하게 보이는 듯했다.부단히 욕망하고,좌절하고,때로 고요히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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