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행사를 마치고 하루를 묵은 뒤 다음 날 초당순두부집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해안 국도를 거슬러 오르다 미시령터널을 관통하는 국도를 탔다.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교통량이 많이 분산돼서인지 단풍철 주말인데도 춘천 오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설악산의 자태와 위용은 언제 봐도 변함이 없었다.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산과 바다가 넉넉하고 아름다웠다.이 모두가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그 다음 주도 1박2일 일정으로 강릉을 다녀왔다.올림픽 손님을 치른 친구의 작은 호텔에서 묵었다.다음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이번엔 대관령 옛길을 택했다.서둘러야할 이유가 없었고 그만큼 마음의 빈자리가 생겼다.먹구름이 몰려들고 비까지 내렸는데 금방 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다른 때 같았으면 이 스산함이 조바심을 부채질했을 것이었다.그러나 흐린 날은 안도를,비 맞은 단풍은 옛길의 운치를 더했다.
지난주는 팔순을 지낸 어머니의 생신도 있고 김장도 할 겸 또 다시 백두대간을 넘었다.보름 전 절정으로 치닫던 단풍은 어느 새 절반 넘게 낙엽으로 변해 있었다.진홍색이 고왔던 삽당령의 단풍도 이미 전성기가 아니었다.평창 강릉 정선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길이 좋아졌다는 것을 오가면서 실감하게 된다.횡계 봉평 둔내 횡성을 잇는 국도가 이전의 고속도로 못지않았다.이곳저곳 들러볼 여유도 생겼다.
백두대간을 세 번 넘나는 사이 가을이 다 저물어간다.국도는 조금 늦게 달릴 수 있어서 좋다.거기서 함구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연을 보았다.원인숙 시인의 ‘11월의 불곡산’처럼 말이다.“석양을 받으며/막바지 단풍이 남김없이 타오르더니/마침내 그 빛깔들을/모두 거두었다/사랑도 그리움도/이젠 쉬어야 할 시간/안으로 더 깊이 채찍질하며/침묵을 시작하는 나무들/산등성이를/오르는 바람도 말이 없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