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 역사서 ‘춘추(春秋)’의 민공(閔公) 편에 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주(周) 왕조의 대부 신백(辛伯)이 제후국 주나라의 환공(桓公)에게 충고하는 대목이다.여기서 국난의 조짐을 네 가지로 꼽았다.첫째는 군주의 애첩이 정비(正妃)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內寵竝后).정비의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받는 것이 애첩이지만,그것이 본부인의 공적인 경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군주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집정대신(執政大臣)과 같이 정사에 참여하는 것을 들었다(外寵二政).요즘으로 치면 측근참모나 비선라인이 득세하는 것을 지적한 것 같다.권력자의 권세를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르면 공조직이 일할 맛을 잃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임금에게 조언하는 역할과 정사를 집행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불신과 갈등의 싹이 튼다.애첩과 정비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는 서자(庶子)가 적자(嫡子)와 한 가지로 행세하는 것을 꼽았다(嬖子配適).물론 이것은 요즘기준으로 본다면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어떤 태생이냐에 따라 삶이 통째로 결정되는 적서(嫡庶) 차별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다.그러나 이 문제는 한시대의 상식과 당대의 기준을 이야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넘어서는 일종의 일탈과 도발이 국난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넷째는 지방의 큰 도읍이 군주의 도성(都城)과 맞먹는 것이다(大都耦國).지방의 제후국이 세력을 키우고 대국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크든 작은 권력을 쥐고 세력이 커지면 맞짱을 뜨고 싶어지는 것이다.스스로 진화하고 적절한 브레이크가 없으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것이 권력의 야수성이다.중앙과 지방이 적절한 공생의 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 공존의 지혜다.

옛날 이웃나라의 이야기인데 읽다보면 묵은 역사서가 아니라는 각성이 든다.목하 여야가 충돌하는 중앙 정치권에서도,지역 관가에서도 기시감(旣視感)이 어른거린다.국감과 예산심의에 들어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부재 중 비서실장의 DMZ 행차를 두고 ‘선을 넘었다’ ‘아니다’ 공방이 뜨겁다.가까운 관가에서도 숨은 권력자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댐이 무너지는 것도 이런 실금에서 시작된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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