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중국의 저명 작가 진융(金庸)이 세상을 떠났다.그는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무협문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그 지경(地境)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그가 94세를 일기로 홍콩의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했듯 누구도 무림(武林)의 지존으로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홀연히 퇴장했다.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물론 전 세계 언론이 그의 죽음을 전하고 작품과 생애를 재조명했다.그는 1924년 저장(浙江)성에서 태어나 1948년 상하이 동우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그 뒤 홍콩으로 이주,1955년 ‘진융’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첫 작품 ‘서검은구록’으로 도전장을 낸 그는 ‘영웅문’ ‘천룡팔부’ ‘녹정기’ ‘소오강호’ 등 15편의 작품을 썼다.특유의 필법으로 독자를 휘어잡았고 그 거친 무림을 평정했다.

홍콩 언론은 그가 정치적,이념적,지리적 장벽을 초월한 아이콘이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그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다.정치,이념,지리와 같은 환경은 작품의 배경이 되지만 작가의 생각을 가두는 족쇄가 되기 쉽다.여기에 얽매이지 않아야 진정한 무사(武士)다.이것은 문학이 넘어야 할 산이고,작가가 극복해야 할 숙명이다.중국에서는 그를 연구하는 ‘진쉐(金學)’이라는 학문이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그의 공부와 문학이 어떻게 세상과 접속하는지가 주목을 끈다.그는 89세 되던 2013년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법학도인 그가 고대문학을 공부하고 5년 만에 모든 과정을 마쳤다.3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당나라의 번성과 쇠락의 과정을 연구,박사학위를 딴 뒤였다.그의 내공이 우연이 아니었다.마오쩌둥(毛澤東)이 “공부를 결심하면 죽어서야 끝난다”며 임종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그는 죽을 때까지 ‘칼’을 갈았던 무사였다.

그의 서사(敍事)는 틀에 갇혀있지 않다.그가 정치와 이념,지리에 구애 받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문학은 정치와 만나고,경제와 통했다.같은 저장성 출신의 알리바바 그룹 마윈(馬雲)회장과는 작가와 팬 이상의 교감을 나눴다.마윈 회장은 진융의 무협정신이 알리바바의 핵심가치이며,그의 작품세계가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소설 속 배경과 등장인물로 사무실 명칭,간부 별명을 지어준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마윈은 누가 봐도 특별할 것이 없는 조건과 환경에서 엄청난 부(富)를 일궜다.그가 세계인이 주목하는 기업가로 성장한 데는 진융의 상상력과 무협정신이 자극과 활력이 됐다.광대무변의 상상력이 이해관계와 형식논리가 만들어낸 벽을 허물었고,평범한 지방도시 영어교사를 세계를 움직이는 거인으로 만들었다.진융은 서사를 만들었고 마윈은 그에게서 사업의 동력을 찾았다.두 사람의 만남이 기적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토대를 만든 덩샤오핑(鄧小平)도 애독자였는데,홍콩에 사람을 보내 그의 소설을 구해 읽었다고 한다.1981년 그를 직접 만나서는 당신의 책을 대부분 읽었고,이미 오랜 친구 같다는 말을 건넸다고 전한다.중국 현대사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論)”며 ‘실용’을 택했다.이념의 틀,정치의 고정관념을 넘어선 것이 어찌 그의 독서와 무관하랴.

한 무협작가의 부음을 통해 문학과 정치·경제가 어떻게 교류·소통하는지를 본다.어떻게 문학이 서사를 만들고,어떻게 경제와 정치가 동력과 전망을 찾는가.전혀 다른 장르인 문학과 정치,문학과 경제가 절묘하게 만나고 또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이 흥미롭다.우리의 모습은 어떤가.경제는 성장 본능을 잃어가고,정치는 진화를 멈춘 지 오래다.경제와 정치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활력과 여유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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