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말마다 춘천찾는 만화가 이현세
콘텐츠 제작 회사 등 지원책 필요
작가입장 호반도시 춘천 매력느껴
학습만화 통해 10대들과 교감

1980년대 초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한국 만화사를 다시 쓴 이현세가 주말마다 와서 지내는 곳은 춘천.생각보다 가까웠다.그러나 그의 거처는 춘천 끝자락으로 중심지역에서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외지다.20여 년 간 가깝고도 먼 그곳에서 이현세는 춘천 만화산업의 흐름을 지켜봤다.강원도민일보 창간 26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만화가 이현세를 그의 집에서 만났다.일흔 이후 삶을 준비한다는 예순 넷 만화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 이현세(64)△울진 출생△경주고 졸△공포의 외인구단,지옥의 링,떠돌이까치,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아마게돈(극장용 애니메이션),남벌,버디 △한국만화가협회장 역임△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한국만화문화상 공로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He is… 이현세(64)△울진 출생△경주고 졸△공포의 외인구단,지옥의 링,떠돌이까치,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아마게돈(극장용 애니메이션),남벌,버디 △한국만화가협회장 역임△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한국만화문화상 공로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 대담= 송정록 편집부국장
▲ 대담= 송정록 편집부국장
-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10대는 학습만화로 봐서 날 안다.20대 중반~30대 중반은 잘 모른다.나를 보고 반색하면 35세 이상이다.한동안 재판으로 시간을 보냈더니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더라.하지만 최근까지도 웹툰 만화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웹툰 만화는 공짜로 보여주니까.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그린 만화의 첫 대면을 공짜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

- 춘천으로 오게 된 계기는.

“마흔살 때쯤 60대에 살만한 데가 어디일지 한참 찾아다녔다.당시에는 건방지기도 했고 젊은 날의 로망도 있었다.불이 4개가 들어있는 사주라는데 물가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당시에는 여기가 차로도 3시간30분이 걸렸다.남자처럼 살고 싶어서 왔는데 정착은 쉽지 않더라.”

- 공포의 외인구단(외인구단)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집에서 애가 만화를 빌려오면 오빠,누나가 보다가 나중에는 엄마,아버지가 ‘이게 뭔데 그렇게 보냐’며 집어들어 다음 편을 찾게 된다더라.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당시 학교에 만화책을 가져가면 처벌 대상이었다.학교에서 회수해 숙직 당번 선생님들이 봤다고 한다.”

- 70년대 단편만화에서 본격적인 장편만화로 만화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본격적인 남녀노소·가족 드라마라고 봐야 한다.그 전까지 만화는 신데렐라,왕자님,정정당당한 스포츠,청소년 성장드라마,꿈,사랑,우정,도전,승리 이런 공식으로 이뤄졌다.외인구단은 그 논리를 완전히 바꿨다.약간 스토커적인 사랑이라고 할까.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남자들의 힘의 논리다.지금같으면 ‘이런 마초 만화는 보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그 마초논리가 일종의 남자 로망이기도 하다.최소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사회 초년생의 절규도 담겼다.”

- 만화가 대중화 된 계기이기도 하다.

“1980년 젊은 작가들이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 자정결의를 했다.우리는 불량만화를 그리지 않겠다,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고 했다.결의하고 내려오면서 만화가 계속 아동 전유물이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야구로 포장했지만 외인구단은 출세,성공을 위해서 권모술수가 판치는 일종의 정치적인 이야기다.‘만화가 이런 얘기를 하나’라고 다들 깜짝 놀랐었다.”

- 최근에는 신화를 그렸다.

“한국사,세계사,삼국지 지금 이번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끝냈다.일반 서민에 대한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더라.”

-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헤라클래스다.삼국지에서는 조자룡.순수한 무장이어서 좋아한다.나머지는 이렇게 전략도 짜고 머리도 쓰고 치정도 얽혀 있는데 이쪽은 원초적 무사들이다.그래서 좋다.”

- 춘천시가 애니메이션 도시를 추진했지만 결국 부천이 이니셔티브를 확보했다.

“접근성이 부천이 나은 데다 부천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확고했다.지속적으로 만화사업에 투자했고 관심을 가져서 만화영상진흥원도 들어섰다.춘천은 먼저 시작했는데 시장 정책이 왔다갔다 했다.춘천은 애니메이션에 집중해야지 웹툰은 안된다.웹툰은 이미 부천에서 워낙 큰 혜택을 주고 있다.한국에서 웹툰은 자연발생했기 때문에 스스로 관성으로 진행될 수 있다.애니메이션은 현재 제품을 만드는 회사 위주의 브랜드 애니메이션 외에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순수한 창작 애니메이션은 구름빵이 있는데 구름빵도 이제는 시들한 분위기다.춘천이 살길은 그런 것을 계속해서 발굴하는 것 밖에 없다.전문 고등학교(강원애니고)가 있는 등 여건은 좋다.문제는 지도부의 의지다.콘텐츠를 만들어서 끌고나갈 회사나 애니메이터들이 와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 지자체에서 관심은 많은데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이제 정착할 곳을 타진 중이다.재직 중인 세종대가 2년 후면 정년이다.요즘은 70살 이후에 뭘하고 살아야 가장 마무리가 좋을까 고민한다.작가 입장에서 춘천은 매력이 있다.도시 중간의 호반은 굉장히 매력적이다.젊어서부터 춘천을 드나들었는데 왜 춘천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발전을 못하나 싶다.분명히 강원도의 중심이었고 교육도시였고 행정도시였는데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는지 아직 모르겠다.”

- 앞으로 계획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은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다.우리나라 정령,귀신을 살리는 일이다.가장 적합한 곳은 경주다.경주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사는 공간이다.하지만 경주는 갖고 있는 문화자산이 너무 많다.일흔이 넘어서 나하고 같이 늙어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생각하고 있다.앞서 말한 정령 얘기도 결국 할아버지하고 손자하고 귀신 얘기 하는 정겨운 풍경일 거다.” 정리/오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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