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윤 시인
▲ 김찬윤 시인
“아이,짜증나!” 4살짜리 손녀가 깔깔거리며 웃던 중 불쑥 뱉은 말이다.“허허 참, 어쩜 요런 표현을 다하나” 싶어 웃기는 했지만 가당치 않은 표현에 한참은 손녀의 말과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요즈음 사람들은 책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인지 서점도 하나둘 사라지고 자료 하나를 찾아도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찾는 게 아니라 전자사전을 검색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는 이유에서 그때마다 스치는 지식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우려에 씁쓸하다.

5년 전 작은 도서관을 개관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2500권의 책을 기증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게 있다.하나는 어촌이나 산촌으로 찾아가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었다.이유는 점점 더 정신문화의식은 피폐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굶주림을 참으면서 할부 책을 구입해 읽던 그때가 그립고 책의 소중함을 잊을 수 없어서다.대부분 육체 건강만으로 백세를 산다고 자만한다.속빈 강정과도 같다.나는 어려서부터 서재에 책이 많은 사람이 부러웠다.잘 모르지만 궁핍해 보이지 않았고 여유와 격이 달라보였다.그런 사람들은 어떤 자리에서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언행의 절제가 있었다.말은 그 사람 얼굴이라 했다.

얼마 전 일이다.식사할 시간을 잊고 책 정리를 하다가 가까운 칼국수 집으로 갔다.음식을 기다리는데 옆방에서 식사를 마치고 흘리는 막말의 쌍소리를 듣게 되었다.홀에서 식사하는 손님들과 내 입맛까지 쓰게 하는 어투.나이께나 든 어른들 같았다.“쯔쯔 본받을 게 없는 사람들이야” 말 한마디가 문화수준으로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줌은 물론 악이고 폭행이다.고운 말 한마디가 웃음을 주는 사회의 질서라 믿는다.

오래 전 이규태 선생의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의식변화는 양서를 읽고 깨닫고 생활에 반영해야 한다.그러면서 삶의 가치를 찾는 눈을 떠 자신을 지키는 근원인 지표로 삼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는 일이다.강릉은 크고 작은 도서관이 많다.하지만 향토작가들의 작품만을 비치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한 도서관은 없다.향토문인들의 작품세계를 열람함으로서 당시의 지역 정서를 비교 탐구,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은 한편으로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예우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창의성과 지혜를 깨우쳐주는 것이 예술이고 책이다.양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이 맑아진다.평소 소원하던 일을 성취했을 때 가슴 벅차게 느끼는 감정이 행복감이다.이 느낌은 표현할 수 없는 맛과 같다.집에 있는 책들을 도서관의 빈 책장에 꽂았다.이 책들을 누군가는 열람해 볼 때마다 어쩜 책들이 방실방실 웃을 것이란 상상을 했다.30년 동안 서재에서 햇볕 구경 한번 못하고 쌓인 먼지 털어주기를 기다렸을 분신과도 같은 책이라는 사실에 웃었다.지역정서를 노래한 작품을 비치해 놓은 것,이것이야말로 문향 강릉의 뿌리를 찾는 첫걸음이다.

내안에 끼와 역량을 십분 발휘해 몫을 다할 때,진정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이고 내가 할 마지막 보루(堡壘)인 독서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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