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不可失(시불가실)!한 번 지난 때(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코오롱 이웅렬회장이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그의 나이 불과 63세.지금이 100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나이가 아니다.그러나 그는 조직의 혁신과 미래를 위해 용퇴를 선택했다.물론 완전한 은퇴는 아니다.그는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했다.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내겐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외친다.당당하다.멋지다.

이 회장의 용퇴가 아름다운 건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자연의 삶은 과거와 현재의 중단 없는 이별.여기엔 미련이 없다.궁상스럽지 않다.순리를 어기지 않는다.동백꽃과 능소화가 어떻게 지는지 보라.툭!툭!툭!꽃송이 전체가 내려앉는다.떨어진 자리에서 흙이 되어 향기로 번진다.주어진 몫을 살고 미련 없이 훌쩍 떠나는 삶이다.동백의 이별은 애달프거나 처연하지 않다.창조적인 자연의 삶을 살았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미래는 다음 세대의 몫이니….

지난 4월,40대 후반의 미국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세 아이에게 ‘주말 아빠’로 기억되기 싫고,아내에게 충실해지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지난 2016년엔 뉴질랜드 존 키총리가 전격 사임했다.당시 그의 나이 55세.그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즉 가족의 많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며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한창 일 할 나이인 40~50대에 영광의 자리에서 물러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결단했다.이웅렬 회장도 그런 사례다.

옳은 말을 얄밉게 한다는 이유로 ‘밉상 정치인’으로 꼽혔던 유시민 작가는 정계 은퇴 이후 스타가 됐다.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살찌운다.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은퇴에 익숙하지 않다.지난 2014년 “짊어지고 가려했던 모든 짐들을 내려놓는다”고 했던 손학규 씨가 바른미래 대표로 돌아왔고,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은근슬쩍 정치 현장에 복귀했다.Old Boy들의 귀환.이들에게 이웅렬 회장이 던진 時不可失은 어떤 의미일까.다시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데….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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