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진 강릉국유림관리소장
▲ 임용진 강릉국유림관리소장
한 때 중장년층에서 유행했던 구호가 있다.바로 ‘9988234’가 그것이다.‘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가 죽는다’라는 의미라고 한다.생활환경과 의료기술이 향상되었지만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50,60대에 접어들게 되면 누구나 현재의 건강상태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수술을 받거나 치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질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하고 삶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운동 등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게 우리 일상에서 인간의 건강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그다지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있다.바로 ‘나무’가 그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발달했다.그러나 그 불은 나무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항상 불보다는 뒷전이다.이 뿐인가!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내용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무는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봄을 알리는 산수유의 꽃으로 시작해서 봄과 여름엔 만발한 꽃,여름엔 시원한 그늘,가을엔 달콤하고 고소한 열매와 울긋불긋 단풍,겨울엔 내려놓은 가지로 온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땔감으로 말이다.

이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은 곳곳에 있다.마을 어귀에서 도착시간을 가늠하게 했던 느티나무,학교 운동장에서 모든 놀이의 중심이었던 플라타너스,마을 동산에 오르면 가장 멋진 모습으로 서 있던 소나무.어릴 때 우리에게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기만 했던 이 나무들이 이제 늙었다.나무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어진 곳에서 사람의 장난으로 발에 차이기도 하고,태풍에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고,어느 해엔 산불에 큰 화상도 입어 중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나무.

노년에 접어든 우리의 나무는 건강할까.수목보호 행사를 위해 지금은 폐교가 되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관을 방문했던 일이 있다.그 곳에 당시 학교 역사와 같이 했던 나무는 수령이 80년은 되어 보였다.행사 확인을 위해 관계자들의 우려에도 나무에 올라 확인한 결과는 참혹했다.무성한 줄기와 가지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갈라짐이 진행되고 있었고 아름드리 나무의 속은 썩을대로 썩어 텅 비어 있었다.…

이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나무는 비단 이 곳 뿐만은 아닐 것이다.과거 헐벗었던 우리의 산이 이제는 울창한 숲으로 변모하여 만족해하고 있지만 그 숲속 각각의 나무는 안녕한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돌보아야 할 때라고 할 수 있다.

도시숲이 중심가보다 초미세먼지 수치가 40%정도 낮고,나무 한 그루가 1년에 미세먼지 35.7g을 흡수한다는 연구결과를 차치하더라도 이제까지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해 온 우리 생활의 역사와 같은 나무를 더 이상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소년과 같이 아무 고마움 없이 마지막 그루터기까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그 동안 꿈과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던 늙은나무의 마지막이 따뜻하도록 우리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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