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분실 주의!보상책임 없음’.신발을 벗어야 하는 식당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기분 나쁜 문구입니다.일행이 없으면 되돌아 나가련만,언짢은 기분을 꾹꾹 누르며 먹는 음식이 맛있을 리 없지요.식사가 끝날 때까지 머릿속은 온통 ‘혹시 잃어버릴지 모르는 신발생각’으로 가득합니다.이런 경험,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테지요.그런데 식당주인은 정말 보상책임이 없는 걸까요.분실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제거할 의무와 책임이 있을 텐데 왜 손님(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상 책임 없음’은 잘못된 표현입니다.신발을 잃어버린 소비자는 상법 제152조에 따라 식당주인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152조 1항에 따르면 공중접객업자는 ‘고객으로부터 임치(任置)받은 물건의 보관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습니다.보관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같은 법 2항과 3항에 그렇게 규정돼 있습니다.

어제(3일)는 제23회 ‘소비자의 날’이었습니다.이낙연 총리는 이날 소비자 권익을 저해하는 제도와 현실을 개선하고,새로운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종합적으로 대응해나가겠다고 했습니다.“전자상거래와 해외 직접구매 폭증은 소비자 권익 보호의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며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소비자 보호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지요.소비자정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총리와 민간이 맡기로 한 만큼 기대가 큽니다.일단,정부의 다짐과 약속을 믿어봅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소비자가 ‘을’인 세상입니다. 블랙컨슈머가 판치고 노 쇼가 골칫거리지만 거대 자본을 앞세운 공급자의 횡포와 비교할 수 없지요.모두가 기억하는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대표적입니다.지금까지 피해를 인정받은 피해자만 607명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고소·고발사건도 여전히 진행중입니다.BMW 차량화재에 따른 분쟁도 격화되고 있습니다.이들의 행태를 보면 소비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합니다.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안도 권력과 자본에 가로막혀 사문화되기 일쑤지요.소비자의 날에 소비자를 떠올린 이유입니다.‘봉’으로 전락한 소비자를….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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