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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이채린 2018년 12월 05일 수요일
▲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에 초,중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주민과 서울시교육청이 뜻이 다르다는 기사를 읽었다.헬리오시티 입주민 협의회는 공청회를 열어 교육청이 혁신학교 지정을 강행하면 등교거부와 법적투쟁에 나서겠단다.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까닭은 하나다.혁신학교에 다니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누군가가 뱉어낸 ‘혁신학교에 다니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따져보지도 않는다.그 말에 휘둘려서 지레 겁을 먹는다.내 아이가 혁신학교에 다녀서 학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두려워한다.

학력(學力).국어사전에서는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한다.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면 ‘배우는 힘’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학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배우는 힘이 약하다는 것인데 과연 혁신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배우는 힘이 약할까?

여기서 말하는 학력은 배우는 힘이 아니라 문제풀이를 잘 해서 높은 점수를 받는 능력이다.입이 아프도록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혁신학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 문제를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해도 어떤 학부모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인 소리다.단답형,객관식 문제풀이를 잘 해서 높은 점수를 얻어 대학에 들어가는 게 공부고 성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어쩌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그런데 잠깐,학교를 다닐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답은 벌써 나왔다.남한산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쓴 책 ‘학교 바꾸기,그 후12년’을 읽어보면 아이들이 바라는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길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드러났다.

남한산 아이들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소리가 있는가를,얼마나 작은 것들이 세상을 담아내고 있는가를,세상에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는 것을,슬플 때는 울어도 된다는 것을,부당함에는 분노해도 된다는 것을,치열했던 놀이의 흔적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를,그리고 ‘치사하지 않게 이기는 법과 당당하게 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남한산초에서는 모든 시간이 배움이었고,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웠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헬리오시티에 사는 아이들,아니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같지 않을까? 왜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휘두르는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열 개인지,잘 먹고 잘 자는 지에만 온 마음을 기울였다.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느새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사라지고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쏟아 붓는다.초등학생이 밤 12시까지 학원을 다닌다는,그래서 항상 잠이 모자란다는 기사도 보았다.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기에 무엇보다 부모님을 사랑하니까 그 뜻을,욕심을 따른다.아이들이기에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한다.아이들은 그런 존재다.혁신학교를 반대하는 까닭이 ‘학력이 떨어져서’라면 그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미래는 뻔하다.그 미래를 위해 아이의 지금,여기의 행복이 미루어지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아이가 어떤 존재로 자라날지는 부모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아이들이 무엇을,어떻게 배우고 싶은지 부모와 교사,어른들이 귀기울여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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