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남 논설고문

 '나라를 다스리는 일, 즉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역할을 함'이 정치의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니까 국가 권력을 획득한 사람이 '정치를 잘 한다'면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고 사회 질서가 바로잡힌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정치를 잘한다'는 말이 그렇게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직장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상사의 인정을 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정치를 잘해서 빨리 출세한다'고 하고 사업을 잘해서 돈을 잘 벌고 공직사회나 권력기관에 아는 사람이 많아 일을 쉽게 풀어가면 또 '정치를 잘해서…'라고 평가한다.
 그런 의미 그런 식의 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런 정치로 출세가도를 달리거나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명성을 쌓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겉보기에는 훌륭한 인품과 덕망이 넘치고 크고 작은 선행을 베풀어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도 한다. 양로원 고아원같은 복지 시설을 찾아가 위문품을 전달할 때 반드시 신문사 방송국에 먼저 연락하고 크고 작은 지역 행사에는 열 일 제치고 참석해 여기 저기 눈도장을 찍고 어쩌다 축사나 격려사라도 할 기회가 생기면 미사여구 교언영색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꾸미고 부풀린다. 연설이 끝나면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며 겸양을 표하지만 사진기자가 나타나면 되도록 가운데 쪽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쓴다.
 '정치를 잘 해서' 뭔가를 이룩하려는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어 이끌거나 이런 저런 조직에 가담해 사회적 위상을 스스로 높여간다. 비록 허상이라 하더라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TV에 가끔 이름과 얼굴이 비쳐지면서 그의 위상(僞像)이 실상으로 뿌리를 내린다. '정치를 잘해서' 쌓아올린 허상이 마침내 어느 분야의 전문가로 또는 지역의 쓸만한 일꾼으로 또는 자질과 덕망을 갖춘 지도자로 빛을 내면 그는 더욱 주도면밀하게 일을 꾸미고 표정을 관리한다. 그리고 확실한 기회가 다가왔다 싶으면 건곤일척 승부의 파도에 몸을 던진다. 확실한 사람 앞에 줄을 서기도 하고 권력의 줄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비록 가장자리나마 입지를 확보하면 지금까지 써먹어온 정치력을 더 한층 강화해 힘의 구심점으로 한발 한발 다가선다.
 '정치를 잘 해서' 크건 작건 권력의 중심부에 발을 딛고 나면 그의 힘은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리게 마련이다. 포퓰리즘을 이용해 치장한 인품과 덕망 자질과 능력의 허상이 무너져 내리면서 본색이 드러나고 깊숙이 감춰둔 욕망의 불꽃이 때를 만난 듯 맹렬하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출세한 사람들은 정점에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대개 추악한 몰골이 되기 십상이다. 일시적 가문의 영광이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100일이 되면 그 아기는 세상에 나와 겪은 첫번째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제대로 자랄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 축하 잔치를 받고 그 어머니는 출산의 고통과 100일동안 갓난아기를 키워낸 노고를 위로받는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난 요즘 세상 인심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정부가 하는 일마다 호된 비판과 질타를 받는다. 덕망과 자질을 갖춘데다 개혁성향이 뚜렷하다고 발탁된 인사들이 국정 처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 질타당하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많지도 않은 재산 문제때문에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하고 호소하는 일까지 생겼다. 물류대란에 이어 교육대란이 새정부의 발목을 잡고 북핵문제를 둘러싼 외교정책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교육계에서는 자기들의 장관이자 나라의 부총리를 물러나라고 외친다. 내우외환인지 외우내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나라 형편이 어지러운데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니 지켜보는 국민들은 걱정이 태산같다.
 춘추시대 노나라 실력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政事)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정(政)은 정(正)이라 그대가 솔선해서 바르게 하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으리요" 정치가 과학이 아니지만(비스마르크) 그 정치가 물리보다 어렵다(아인슈타인)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순리를 거역하는 사람들이 원칙을 피하면서 매사를 '정치적'으로 고려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심지어 얽히고 설킨 교육행정 문제에 어설픈 해법을 제시하면서 '정치적 결단'이라고 변명하는 판이니 너무나 정치적인 현상들이 참여정부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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