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재혁 논설위원
▲ 권재혁 논설위원
홍천(洪川)이라는 지명이 처음 명명된 것은 고려 현종 9년(1018)년이다.고구려 때 벌력천현(伐力川縣)으로 칭해 오다가 신라 경덕왕 때 녹효(綠驍)로 고쳐,삭주(朔州·춘천)의 영현(領縣)이 됐고,고려 인조 21년(1143년)홍천에 감무(監務)를 두었다.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홍천현이 되어 현감을 두었고,조선 고종 33년(1896년) 홍천군이 됐다.고려 현종은 거란과의 30년 전쟁을 끝내고 지방행정 제도를 정비하면서 홍천이라는 지명을 지었다.이때 전라도,경기도 등이 생겨났다.이는 강원도가 처음 명명된 조선 태조 4년(1394년)보다 376년 빠르다.이 같은 유래로 올해는 홍천 정명(定名) 천년(千年)이 된다.

홍천 정명 천년은 이 땅에 살다간 선조들의 피와 땀이 살아 숨쉬는 인고의 세월이다.홍천 곳곳에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삼국시대는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선,고려 때는 팔만대장경을 총지휘한 용득의,조선 때는 영의정을 5번이나 지낸 이원익이 살았고,조선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던 이름 없는 동학군의 피가 묻혀있고,일제 때 무궁화 보급에 앞장선 남궁억 선생과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혼이 살아 있는 곳이다.6.25 전쟁 때는 나라를 지키려 피 흘린 젊은 용사들의 넋이,월남 파병훈련 중 부하의 목숨을 구한 강재구 소령의 숭고한 군인정신이 깃든 곳이다.또 60∼70년대 국내 최대의 화전민들이 살았던 애환의 땅이고,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희망의 땅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홍천 정명 천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혀 없다.홍천 정명 천년 기념행사는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현재를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에게는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하고,미래 세대에게는 새 희망을 심어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홍천 천년의 시간여행,역사,문화,인물 등 조금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천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지난해 홍천군민의 종 건립 소식이 들리더니 깜깜무소식이다.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지만,그 이후 아무런 행사가 없다.그러다 지난 7일 홍천 정명 고증용역 최종 발표회가 있었다.홍천 정명 천년의 해를 20여일 남기고 말이다.그것도 고증용역이라고 한다.이는 지난해 모두 끝냈어야 했다.이러다 보니 지역주민들은 올해가 홍천 정명 천년인지 모른다.올해 정명 천년인 홍성군·울주군 등 다른 곳은 정명 천년 선포식,천년의 발자취,타임캡슐 등 각종 행사를 공유하며 지역주민들에게 자신감과 새로운 도약을 심어줬다.

지금 홍천군은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높다.지난 60∼70년대 인구가 13만 명이 넘었고,전국 최대 면적과 강원도 교통의 요지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옛 추억이 됐다.동서고속도로(서울∼춘천∼홍천∼인제∼양양)가 우회하면서 지역 경기에 도움보다는 국도 44호선의 침체 등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평창동계올림픽으로 지난해 말 KTX 강릉선(강릉∼평창∼횡성∼원주∼서울)이 개통했다.또 2025년 동서고속철도(서울∼춘천∼화천∼양구∼인제∼속초)가 완공되고,동해북부선이 북한과 연결되면 홍천은 교통 소외지역으로 전락한다.그동안 기대를 걸었던 홍천∼용문 철도 개설은 일찌감치 강원도 현안사업에서 제외됐다.이를 반영하듯 최근 홍천 인구 7만 명이 붕괴했다.

이 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기다.지난 7월 28일 홍천군민의 날 기념식때 정명 천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열어 군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천년이라는 역사 문화는 무한한 자원이다.홍천은 강과 산,울창한 숲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수도권 위성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홍천군은 지역주민들이 애향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희망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이는 홍천군민에 대한 의무이다.천년고도(千年古都) 홍천의 굴기를 기원한다.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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