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무렵에 서면 대체로 후회가 밀려드는 게 보통이다.연초의 다짐은 흐지부지된 것이 많다.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세월을 축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12월 마지막 달도 열흘이 지났고 남은 날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게 뻔하다.뭔가를 하기에는 다 글러버린 것이 아닌가.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예단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너무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각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얘기다.낙담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그저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지금이야말로 무엇을 하든 나에게 주어진 가장 빠른 시간임에 틀림없다.후회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서 있는 시간에 대한 자각이다.탄식이라는 것 또한 지금 이 시간에 대한 절실한 각성이 온몸을 통해 그렇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시간을 그렇게 한정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재단하면 그만큼만 쓰게 된다.사람의 역량도 마찬가지다.조선시대 독서광으로 유명한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10세가 돼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대 문장가들이 신동(神童)소리를 들으며 일찍 싹수를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그의 부친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읽고 또 읽으면 대 문장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말대로 읽고 또 읽어,후세에 필명을 날린다.그의 시 가운데 “한유의 문장 사마천의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韓文馬史千番讀),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董捷今年進士科)”라는 대목이 그의 공부를 말한다.한 번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특히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은 1억 번 넘게 읽었다 해서 그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둔하고 나이도 많다며 스스로 담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배우는 이는 재능이 남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나는 어리석었지만 끝내 이뤘다.부지런해야 한다.”58세의 늦은 나이에 급제한 뒤 강원도사 홍천군수 정선군수를 지낸 인연이 있다.“느린 것을 걱정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는 중국속담도 있다.누구든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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