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서 겨울나는 철새 50여종
철새 따라 탐조객 발길 이어져
가까운 거리서 관찰가능 장점
생태습지 복원에 서식마당 확대
강릉커피 음미하며 선물같은 관찰

▲ 큰고니떼가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인 경포호에서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 큰고니떼가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인 경포호에서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장면1

겨울 설산의 눈 빛을 닮은 듯 온통 하얀색 큰 몸통에 기나긴 목을 가진 녀석들이 드넓은 하천 하구의 잔잔한 물결을 유유히 헤친다.노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부리가 방금 화장을 마친 듯 선명하다.갈대 군락지를 헤치면서 먹이를 취하는가하면 별 파동도 없이 물결을 헤치면서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다.달음질치듯 수면을 박찬 뒤 몸집 보다 훨씬 큰 날개를 펴고 상공으로 날아오를때는 발레리나가 발목을 한껏 곧추세우고 춤을 추듯 우아하다.탐조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녀석들은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보호되고 있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 201-2호)’이다.



▲ ‘겨울 진객’ 흰꼬리수리가 강릉 남대천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큰 물고기 한마리를 낚아 올리고 있다.
▲ ‘겨울 진객’ 흰꼬리수리가 강릉 남대천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큰 물고기 한마리를 낚아 올리고 있다.
#장면2

흑갈색 몸통에 하얀색 꼬리가 부챗살을 펼친 듯 다부진 녀석이 창공에 나타났다.물위를 스치듯 날면서 먹이를 찾던 녀석은 찰나의 순간에 커다란 물고기 한마리를 발로 낚아챈다.한눈에 봐도 창공과 하천의 왕자라고 할만큼 카리스마가 넘친다.녀석이 나타나자 하천 하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던 갈매기들이 녀석의 먹이사냥에 놀라 일제히 날아오르면서 고요하던 하천이 갑자기 떠들썩 난리판이 된다.국제적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천연기념물 제 243-3호)’는 그렇게 하천을 지배한다.





▲ 해녀 못지않은 잠수 실력자인 검둥오리가 강릉 연안의 바다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 해녀 못지않은 잠수 실력자인 검둥오리가 강릉 연안의 바다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두 장면은 겨울철 강릉의 남대천 하구에서 종종 목격되는 진풍경이다.대관령을 넘어 동해바다를 만나는 것이 국민들의 로망이라면,겨울철 강릉의 남대천 하구와 경포호,바다는 철새들의 낙원이다.기러기류,오리류,고니류,맹금류 등이 앞다퉈 강릉에 여장을 푼다.큰고니와 흰꼬리수리를 비롯 고방오리,쇠오리,청둥오리,흰죽지,검은머리흰죽지,청머리오리,비오리,알락오리,넓적부리,뿔논병아리,큰거리기,쇠기러기,말똥가리 등등.철새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강릉의 경포호와 남대천 하구,바다를 찾아오는 철새,‘겨울진객’들은 줄잡아 50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서해안이나 철원평야 처럼 대규모 군무를 펼치는 무리는 아니지만,종의 다양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살을 에는 맹추위로 모든 것이 얼어붙는 시베리아 툰드라의 동토(凍土)를 피해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철새들이 따뜻한 남쪽나라 강릉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오랫동안 강릉의 철새를 관찰하고 기록해온 강릉시청 환경과 박효재 주무관은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석호(潟湖)를 비롯한 기수역에 영양 밀도가 높고,먹이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동해안을 찾는 철새 종이 다채롭고,탐조 여행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해안 탐조 여행은 물 때를 맞춰야 하는 서해안과 달리 조수 간만의 차이가 없어 더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종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박 주무관은 “하천(호수)는 물론 바다를 서식 무대로 하는 여러종의 철새를 구경할 수 있는 것도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 탐조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바다 철새들은 대표적 관찰 포인트인 사천해변을 비롯 주문진항,영진항,강릉항 등의 항구 주변에서 어렵지않게 관찰할 수 있다.최근에는 경포호 주변의 농경지를 습지를 되돌리는 ‘가시연 습지’와 ‘순포 습지’ 복원사업이 이뤄지고,남대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철새들의 서식 마당이 더욱 확대됐다.대륙과 해양을 잇는 중간기착지인 지리적 여건에다 강릉의 우수한 서식환경이 더많은 철새들의 방문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효고현 황새복원연구센터에서 인공부화해 자연방사한 멸종위기종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가 겨울마다 찾아들어 철새 연구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도 화제거리다.이 황새는 지난 2016년 봄에 일본에서 방사한 뒤 그해 11월까지 관찰되다가 사라졌으나 2017년 12월에 강릉 남대천에서 발견됐고,올해 겨울에도 다시 강릉을 찾아 겨울을 나고 있다.1년 동안 소식이 없어 자연에서 도태돼 죽은 줄 알았던 황새가 직선으로 600㎞ 거리에서 발견되자 일본에서 방사 당시 황새를 날려보낸 초등생들은 감사 손편지를 강릉에 보내오기도 했다.하얀 입김이 마구 뿜어지는 겨울날,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면서 검둥오리의 숙련된 잠수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철새의 무릉도원’ 강릉에서 만나는 큰 선물이다.

덧붙여 강릉사람들은 예로부터 감나무의 감을 모두 수확하지 않고,여나무개를 꼭 나무 꼭대기에 남겨두면서 ‘까치밥’이라고 불렀다.강릉 탐조여행에는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 같은 배려와 사랑이 필요하다.그래야 내년에도,그 이듬해에도 큰고니와 흰꼬리수리를 만날 수 있다. 최동열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