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수능시험이 끝난 12월에는 대학진학이나 사회진출을 앞둔 고3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매번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지만 결국은 ‘인디언의 맨해튼 매각’ 일화를 선택하게 된다.

맨해튼의 지명은 ‘구릉지’를 뜻하는 원주민어 ‘마나하타’에서 유래했는데 부동산이 비싼 뉴욕에서도 가격이 제일 높다(약 1200억달러로 추산).1626년 네덜란드 총독 피터 미뉴이트는 양질의 비버 모피 생산·집산지였던 맨해튼을 인디언들에게 24달러어치의 유리구슬 등을 주고 사들였다.1200억달러에 달하는 비싼 땅을 단돈 24달러에,그것도 싸구려 유리구슬에 속아 넘겼으니 인디언들은 선조의 어리석은 결정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반전이 있다.프랭클린 템플턴에 따르면 인디언들이 받은 24달러를 현금으로 바꿔 연 6% 이자율로 저축을 하고 지금까지 유지했다면,1996억달러로 불어나서 현재의 맨해튼보다 800억달러(약 90조원)나 많은 금액이 된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24달러에 맨해튼을 판 행위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으며,얻은 수익을 저축하지 않고 그냥 써 버린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이는 ‘복리의 마법’을 설명할 때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적은 돈이라도 장기간 꾸준히 저축하면 큰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때 소득의 25%에 육박하던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7.6%(2017년)로 추락했다고 한다.국가가 나서서 저축을 장려하고 저축의 날에는 대통령이 손수 모범 저축자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등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르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신문기사 몇 줄이 전부다.

국내경기 부진,고용시장 악화 등으로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높은 교육비,주택대출금 상환 등 지출은 계속 늘어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니 저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낮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과거와 달리 이자율이 2~3%인 저축을 무작정 미덕으로 강요하는 것도 맞지 않다.

다만,저축이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한 푼,두 푼 아껴 모으다 보면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법을 절로 체득하게 되고 이렇게 체화된 경제관념은 효율적인 지출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

주위에서 대학생들이 대부업체에서 쉽게 돈을 빌려 함부로 쓰다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간혹 보는데,어려서부터 돈을 절약하는 습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아울러 앞서 인디언 사례에서 보듯 저축은 처음에는 느린 것 같아도 장기로 갈수록 빠르게 돈이 불어난다.

일생동안 같은 급여를 받아도 일찍 저축을 시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는 노후에 보유하게 되는 부의 차이가 클 수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자녀들과 은행에 가서 적은 금액이라도 통장을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장차 아이가 올바른 경제관념을 갖고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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