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를 듣거나,남의 글을 읽다가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 칠 때가 있다.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상대방이 하는 경우다.언젠가 ‘시와 소금’이라는 문학잡지를 보다가 김채운 시인의 ‘청탁 원고’라는 시를 읽고는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출하 일자에 맞추려/영글다 만 열매를 땄습니다./풋내 물큰한 무녀리들 앞에서/마음이 자꾸만 곱아졌습니다.//불시에 들이닥친 손님 상(床)에/설익은 떡을 내놓으시고는/물러나 속 끓이시던/오래 전 엄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청탁 원고는 정해진 기준이 있다.글의 주제와 분량,마감시간이 있다.필자에게 보내는 ‘기대’라는 무언의 요구가 또 있다.이 기대는 물론 청탁서 목록에는 없다.가장 무서운 것이 글 빚이라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부탁을 하는 것은 저쪽에서 하지만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는 것은 이쪽이다.생각은 가둬지지 않고 시간은 무심하고 조바심 날 때가 많다.이럴 때의 시간은 어떻게든 버티면 돌아오는 제대 날짜와는 다르다.기자들은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마감 시간은 개별적 사정을 봐 주며 오지는 않는다.마감시간을 ‘데드라인(deadline)’이라고 하는데 잔인한 구석이 있다.작가나 기자만 청탁을 받고 시간에 좇기는 것은 아니다.누구든 연초가 되면 여러 형태의 청탁을 접한다.타인의 주문이든,스스로의 다짐이든 이런 게 저마다 채워야 할 청탁원고가 아닐까.1년이 긴 것 같지만 잠깐이다.좇기 듯 원고 마감을 하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일이 몇 번이던가.이유 불문하고 덜 익은 열매를 따고,설익은 떡을 상에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