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100년전 그날을 만나다
1919년 봄, 피맺힌 절규로 피워낸 조국
한반도 중심 강원도 51일간 ‘ 만세 메아리’

2019년 새해가 밝았다.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1919년) 100년이 되는 해다.3·1운동부터 시작된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한 함성이 한 세기를 지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는 100년전 그날로부터 시작됐다.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빈곤국가에서 경제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강원도민일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연중 다양한 기획을 연재한다.

# 항일운동 100주년이 갖는 의미와 역사

 

▲ 1)체포압송되는 3·1운동 주도학생들  2)시위학생을 체포하는 일경  3)한국 광복군들의 서명이 적힌 태극기
1)체포압송되는 3·1운동 주도학생들
2)시위학생을 체포하는 일경
3)한국 광복군들의 서명이 적힌 태극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 세계는 전후 처리를 위해 급박한 상황을 맞고 있었다.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이듬해인 1919년 1월 18일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의 이름으로 한국 대표를 급파했고 개막 사흘 후인 1월 21일에는 고종이 급사하며 국내외적 상황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종교계와 학생들이 독립운동 준비에 나섰다.때마침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3·1운동의 태동을 알렸다.

 

3·1운동은 서울과 이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됐다.3·1운동의 중심이 된 천도교와 기독교는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의 종교 지도자들을 아울러 민족대표를 꾸렸고 경향각지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독립시위를 준비했다.3월1일 서울과 평양,평안남도 진남포와 안주,평안북도 의주,선천,함경남도 원산 등 7개 도시에서 일제히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서울은 이른 새벽 학생들이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작됐고 정오 무렵부터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이 속속 탑골공원에 집결했다.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갖고 경찰에 그 소식을 알렸다.같은 시각 수천 명이 운집한 탑골공원에서는 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했다.평양에서는 장로교,감리교,천도교가 각각 교회에서 독립선언식을 하고 시내로 나와 연합시위를 벌였다.진남포에서는 감리교와 감리교계 학교 교사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안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기독교 청년지도자들이 주도했다.7곳의 도시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들은 연대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7곳 모두 철도를 통해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날 혹은 당일 날 전달받아 낭독했다.

3·1운동의 외침은 다음날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2일 경기도 개성,3일 충청남도 예산,4일 전라북도 옥구,8일 경상북도 대구,10일 전라남도 광주,강원도 철원,함경북도 성진·임명,11일 경상남도 부산진 등 하루가 거듭될수록 들불처럼 번져갔다.3월19일 괴산 시위로 충청북도에서 점화되며 당시 전국 13개 도가 모두 3·1운동 대열에 나서게 됐다.3월21일에는 제주와 조천리 시위로 바다를 격한 제주도에까지 파급돼 한국 역사상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3·1운동 규모는 3월1일부터 4월29일까지 13개 도 212곳에서 약 110만명이 참가했다.시위횟수는 총 1214회로 단순시위 778건,시위충돌 426회,경찰헌병관서 습격 159회,일반관서 습격 120회 등 치열하게 진행됐다.매일 50~60여회에 이르는 만세시위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산됐다.도시에서는 종교인과 학생들이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면 농촌 시위는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장터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농민항쟁에 자주 등장한 횃불시위,봉화시위도 일어났다.특히 3·1운동은 모두가 시위를 주도했고 동참한 민주적인 항쟁이었다.민족의 일원으로서 누구든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고자 했던 자발성은 폭발적이었다.

100년전 시작된 민족투쟁의 역사는 21세기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근간이 됐다.1960년 4·19혁명,1979년 6·10민주항쟁,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 격변의 시기에는 시민들의 항쟁이 함께 했고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총 23차례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 촛불집회는 하루 최대 232만명·연인원 약 1700만명(주최 측 추산·전국 기준)의 대규모 인원이 운집했고 수개월 간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열려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뿌리인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출발점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우리 헌법 제1조를 낳았다”며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기념하며 희망찬 미래 100년을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할 때”라고 말했다.

 

# 강원도에서 꽃피운 항일정신

한반도의 중심지인 강원도는 1919년 3·1운동 전후로 국내 항일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다.3·1운동의 발상지인 서울과 이북지역 중 이북지역의 물결을 남쪽으로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강원도의 항일운동은 3월2일부터 4월21일까지 51일간으로 13개 도 중 경상남도(58일),경기도(54일),황해도(53일) 다음으로 오랜기간 지속됐다.

강원도의 3·1운동은 3월2일 철원의 최병훈이 현재 북강원도 평강(平康)지역 천도교 대교구로에서 독립선언서 200여 장을 가져와 철원의 천도교인에게 전해준 것으로 계획이 시작됐다.하지만 일본경찰에 발각돼 주모자 11명 전원이 붙잡히면서 일단 계획은 무산됐고 3월10일 본격적인 만세운동을 시작했다.이후 화천 3월3일,원주·횡성 3월27일,춘천 3월28일,홍천 4월1일,양구 4월3일,강릉 4월4일,속초 4월5일,삼척 4월15일,영월 4월21일 등 도내 전역으로 확대됐다.

 

 

 

 

▲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위치한 기미만세공원
▲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위치한 기미만세공원

 

도내 만세운동의 특성은 대체로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서는 기독교도가,그리고 산간에서는 천도교도가 주동했다는 점이다.도내 각 군의 만세운동 중 가장 치열한 투쟁을 벌인 곳은 양양이었다.양양장터 만세시위는 4월4일 양양면,서면,손양면민들이 계획해 4000여명이 장터와 군청,경찰서 주변에서 만세를 외쳤다.권병연·김학구 등이 총탄에 쓰러졌고 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이후 4월9일 현북면 기사문리 만세고개에서 1000여명이 모여 소위 기사문운동이라 불린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양양만세운동 중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일제 측 자료에 의하면 강원도내에서는 20개군이 참가,약 2만5000여명이 총 74회 만세운동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하지만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57회 만세운동에서 9만9510명이 모여 144명이 사망하고 64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360명이 일제에 잡혔다고 기록됐다.이 통계는 국내에서 조직 운영된 연통제(聯通制)의 보고서에 근거한 것으로 만세운동 발생 당시의 피해상황일 뿐이다.일본 군경이 독립만세운동이 종식된 뒤에도 주동자의 색출에 혈안이 돼 살상과 방화를 일삼았던 점으로 보아 피해 인원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 3)춘천시 하중도길 128에 위치한 강원도 항일애국선열 추모탑 4)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188-5에 위치한 양양 3·1만세운동 유적비 5)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40(횡성 보훈공원)에 위치한 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비 6)철원군 철원읍 금학로251번안길 12에 위치한 애국선열 추모비
▲ 3)춘천시 하중도길 128에 위치한 강원도 항일애국선열 추모탑 4)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188-5에 위치한 양양 3·1만세운동 유적비 5)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40(횡성 보훈공원)에 위치한 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비 6)철원군 철원읍 금학로251번안길 12에 위치한 애국선열 추모비


100년이 지난 현재 도내 곳곳에 3.1운동 정신을 기리고 역사를 간직한 곳들을 만날 수 있다.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도내 독립운동 현충시설 48곳 중 1919년 3·1운동에 관한 기념비,기념공원,시위지 등 시설물은 21곳에 달한다.하지만 도내 애국지사 선양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강원지역은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기념관과 애국지사 위패봉안소가 없는 지역이다.특히 지난해 5월 9일 도내 유일의 광복군 출신 생존자였던 고(故) 이호길 애국지사가 별세하며 명맥이 끊긴 만큼 도내 보훈단체들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애국지사에 대한 선양사업이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는 지난해 12월 이종호(광복회 강원도지부장) 위원장 등 14명의 위원을 위촉,강원도 3.1운동·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하지만 도내 보훈단체들의 요구한 사업예산은 ‘애국지사 유족 해외전적지순례’를 제외하고 전액 삭감됐다.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관련된 예산도 삭감돼 예산마련에 나서고 있다.이종호 광복회 도지부장은 “100년이 지난 현재 강원도내 곳곳에도 3.1운동의 역사와 희생하신 애국지사들의 숨결과 신념이 남아있다”며 “도내 후손들을 위해 광복의 역사를 가르칠 교육의 장,애국지사들의 선열을 기리는 선양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석

 

 

▲ 강릉시 저동 경포대앞 조각공원내 위치한 강릉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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