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원이 몰고온 한숨과 불안 속 임대료는 조용히 올랐다
최저임금 7530원→8350원
노동자-사용자 갈등 심해져
정작 비싼 임대료 문제는 외면
‘ 김용균법’ 갖는 의미 되새겨야
공동체 실현하는 기해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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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

나는 올해 이런 새해인사를 많이 받았다.알고 보니 올해는 기해년(己亥年),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사실 부자가 되라는 새해인사가 올해 처음 유행한 것은 아니다.한때 모 통신회사 광고로 “부자 되세요”라는 새해인사가 유행한 적도 있었는데,새해인사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새해에는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래서일까,온오프라인 연하장에는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가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란다는 상투적 인사말이 여전히 무난하게 쓰이는 것 같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잘 감추어지지 않는다.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우리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대어’,‘금값’,‘헐값’.이 단어들은 사람들의 가치를 평가할 때 언론에서 사용했던 말이다.‘몸값’으로 검색을 하자 ‘손흥민 몸값’,‘류현진 몸값’,‘메시 몸값’이 연관검색어로 추천됐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사람에게 몸값 운운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다.경기력이 좋으면 연봉이 높아지고,연기력이 좋으면 출연료가 올라갈 수 있다.그런데 그걸 순위까지 매겨서 ‘값’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누군가는 연봉협상을 할 수도 있지만,누군가는 자신의 노동력을 최저시급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지는 최저시급 논란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다.시간제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입장에 서면 그 마음이 헤아려졌고,자영업자의 입장에 서면 그 입장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언론에서는 똑같은 내용에 서로 다른 수식어를 덧붙여 요란하게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어떻게 보자면 서로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그런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안타깝기도 하다.직원을 해고하든지 상품의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이,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마저 잃을 수 있다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생생하게 만져지는 것 같다.

820원.작년과 비교했을 때 최저임금은 시간당 820원이 올랐다.이 820원 때문에 사장은 직원을 해고하고,직원은 일자리를 잃는다.하루에 8시간 주 5일을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주휴시간 35시간을 포함한 근로시간이 209시간이 되는데,그렇게 꼬박 일하면 174만5150원을 받게 된다고 한다.이렇게 번 돈으로 사람들은 밥을 먹고,집세와 세금을 내고,이리저리 알뜰하게 쪼개 미래를 위해 저축할 궁리도 할 것이다.

820원.사람들이 820원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는 동안에도 임대료는 말없이 차분히 올랐다.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수입의 4분의 1 정도를 월세나 대출금으로 내고,사장님은 줄어든 수입의 상당부분을 건물 임대료로 내야할 것이다.지난 해 서울 명동의 평당 임대료는 330만원이었다.한 평에서 장사를 할 수는 없으니,제 아무리 좁은 매장이라도 임대료는 수천만 원에 달할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820원 때문에 걱정하고 분노하는 명동 매장의 사장과 직원의 인터뷰가 번갈아 나오는 동안에도,막상 수천,수백만 원에 이르는 임대료 문제는 크게 제기되지 않았다.계산해보면 한 달의 임대료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일 년을 꼬박 일해야 받을 수 있는 연봉과 맞먹거나,훌쩍 뛰어넘는다.그냥 생각해보았다.820원과 수천만 원 임대료의 차이를.

820원 때문에 온통 시끌시끌하다.그렇게 해서 오른 8350원으로는 영화도 한 편 볼 수 없고,책 한 권도 사 읽을 수 없다.밥 한 끼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비용으로도 부족하다.높은 임대료를 감수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한들,시간당 8350원을 버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먼 세계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김용균 노동자가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게 불과 보름전이다.그 비통한 죽음 앞에서 모두들 애도했지만,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사업자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요란한 싸움을 벌이다 겨우 통과되었다.그래서 만들어진 ‘김용균법’.사람이 죽은 후에야 겨우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

황금돼지해가 희망차게 열리는 이때 부자 되세요,대박나세요,라는 말을 건네기보다 아무런 소리 없이 생명 하나를 보살피고 돌볼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어 본다.아니,머잖아 그런 날들이 실현될 수 있는 세상과 마주할 수 있길 기다려 본다.새해니까,무엇이든 꿈꾸기 좋은 시간이니까.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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