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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서

권재혁 2019년 01월 11일 금요일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전은 소설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도덕교과서로 상징된다.유학의 통치이념은 충효(忠孝)에 두고 있다.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인륜의 기초로 삼았다.고려·조선시대에 부모상을 당하면 정승이라도 조정에서 물러나 시묘를 해야 했다.이를 어기면 탄핵을 당한다.실제로 고려말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이숭인이 불효로 탄핵을 받았다.모친 사망 후 백일을 넘기고 육식을 했다는 이유다.불효는 삼천 가지 형벌 중 가장 큰 죄로 여겼다.

서양의 효(孝)는 우리나라와 달랐다.그들은 부모자식 간의 상속과 부양을 계약서로 썼다.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 교수는 상속의 역사에서 “부양계약서에는 의식주,간병문제,장례절차까지 하나하나 기록했다”며 “이런 계약서는 20세기 연금제도 도입으로 사라졌다”고 했다.효(孝)를 자식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아직도 우리나라는 고장마다 효자·효부상을 수여하는 등 효(孝)의 고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효(孝)의 개념이 서양을 닮아가고 있다.부모와 자식이 상속과 부양을 조건부로 효도계약서를 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최근 한 유명배우와 조부가 효도계약서 이행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끌었다.2015년 대법원은 효도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70대 부친이 증여한 재산을 반납하라고 판결했다.그 후 부모가 재산을 물려준 자녀가 부양을 게을리 한다며 재산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효도계약서에 이어 불효자는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 개정되고 있다.국회는 자식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반환하도록 하고,부모를 폭행한 자녀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명 불효자 방지법을 발의했다.우리나라 노인빈곤층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1위라고 하는데,100세까지 수명 연장으로 자식들로부터 효도받기 힘든 세상이 됐다.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팍팍해 졌다고 해도 효(孝)는 인륜의 마지막 보루이여야 한다.효도계약서와 법률이 명확한지는 모르지만 부모자식이 서로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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