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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미술평론] 비잔틴미술의 돔과 모자이크

동로마제국 성전, 기독교·이슬람 건축의 모태가 되다
터키 이스탄불 ‘하기아 소피아’
그리스·로마 이은 비잔틴 상징
이슬람시대 종탑 미나레트 건축
모자이크 성화 석회로 감춰
실내 기둥마다 아치형태 연결
거대한 내부구조 ‘바실리카’
교회건축 기본 자리매김

최형순 2019년 01월 12일 토요일
▲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동로마제국의 전성기를  기념할 성전 건설계획을 세웠다.사진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전경.
▲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동로마제국의 전성기를 기념할 성전 건설계획을 세웠다.사진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전경.
해질녘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는 하나 둘 불을 밝히며 그 웅장한 자태에 빛을 더한다.네 개의 종탑과 함께 이슬람 사원의 전형처럼 알려지고 있는 건물이다.이스탄불 시내 곳곳에 이런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가득하고 인도의 타지마할에서조차 이런 유형을 확인하게 된다.그런데 이 건물은 원래 기독교 교회였다.미나레트라고 하는 종탑은 이슬람 시대에 덧붙여 세웠다.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이 천년의 중세시대를 지나 르네상스로 부활한다고 했을 때의 그 천년을 다시 생각해보자.‘초기 기독교 미술’과 로마네스크와 고딕미술,그리고 비잔틴 미술이라는 말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여기서 서유럽과 동유럽이 구별되는데 동유럽은 중세 전체가 ‘비잔틴 미술’ 하나로 불리고 있다.서유럽에서는 게르만 족의 이동과 함께 서로마가 무너지고 프랑크 왕국의 판도 아래 로마네스크와 고딕 같은 각각의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로 접어들게 된다.르네상스가 일어난 것도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입된 예술가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비잔틴미술’이란 중세 1000년 역사를 간직한 동로마 제국,즉 비잔틴 제국의 미술을 말하는 것이다.그 수도가 그리스가 처음 만든 도시 비잔티움이었다.그곳은 나중에 가톨릭의 서로마와 구분되는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지가 된다.그렇지만 지금은 이슬람의 도시 이스탄불로 불리고 있다.비잔틴을 정복한 오스만 투르크가 이 도시의 주인이 되면서 오늘로 이어진 결과다.오늘의 터키며 한자로는 돌궐인 투르크가 거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비잔티움의 또 다른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즉 콘스탄티노플이다.지중해 전체를 자국의 호수로 만들었던 거대 제국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비잔티움으로 천도하고 부르게 된 이름이다.

▲ 하기아소피아 후진부.모자이크가 상당부분 복원됐다.
▲ 하기아소피아 후진부.모자이크가 상당부분 복원됐다.
그리스에 간다면 이스탄불을 빼놓고 역사를 이어보기에 너무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아테네에서 이스탄불은 우리나라에서 제주를 오가듯 10여만 원의 항공비용으로 다녀올 수도 있다.아테네가 고대 그리스를 보여준다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와 그 전통을 이은 중세의 비잔틴 1000년을 그곳이 보여주기 때문이다.중세 콘스탄티노플이 가장 큰 국제도시였듯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양안에 걸쳐 있는 지금의 이스탄불도 1500만 명이 넘는 인구의 거대도시다.

그 비잔틴 미술을 또한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하기아 소피아다.‘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 말이다.터키 말로는 ‘아야 소피아’라고 부른다.이슬람에서는 돔이 있는 건축 자체를 바꿀 수 없었지만 그 안에 금빛으로 가득한 모자이크는 석회를 덧발라 감춘 채 모스크로 사용했다.그렇게 비잔틴 교회는 이슬람 사원의 기원이 됐다.푸른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멧 사원도 이와 같은 형태로 이 하기아 소피아 맞은편에 지어졌다.

▲ 1930년대 이후 하기아 소피아는 이슬람사
원에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래 콘스탄티누스가 처음 만든 하기아 소피아(Basilica of the Hagia Sophia)는 소실되고 말았다.6세기에 이르러 유스티니아누스가 동로마의 전성기를 기념할 야심찬 성전 건설계획을 세웠다.그것이 지금의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웅장하게 우뚝 선 성전의 완성에 대제(大帝)는 솔로몬을 이겼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그가 바로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동로마제국이 다시 고대 로마 전체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최성기를 구가했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이다.

바실리카라는 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기독교 시대 이전의 로마에 거대한 내부를 가능하게 한 건물이 바실리카였다.그것은 실내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마다 아치로 연결해서 넓은 실내를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그런 바실리카 형식으로 교회를 만든 것이 이후 모든 교회 건축의 기본이 됐다.이 교회를 비롯해 로마네스크와 고딕 성당도 모두 바실리카 양식이라 부르는 것은 상당히 다른 외관과는 달리 같은 실내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교회에 들어서면 높이 솟은 가운데 아치와 옆으로 그보다는 낮은 아치의 측랑이 있어 모두 같은 양식임을 알 수 있게 한다.하기아 소피아는 안쪽 높이가 5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돔을 가운데에 얹었다.이후 비잔틴의 영향을 받는 모든 교회는 또한 이렇게 한 가운데 높은 돔을 가진 형태를 보여준다.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피렌체의 델 피오레 대성당,피사의 대성당,그리고 르네상스 이래 지은 베드로 대성당까지 어디를 보더라도 한 가운데에서 돔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대성당을 돔에서 나온 말 두오모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물론 동로마이자 비잔틴 이후 동방 정교회의 대표자를 자임한 러시아의 여러 돔 또한 이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이 돔과 함께 그 실내에 가득했던 금빛 모자이크는 성화인 이콘(Icon)화의 전형이기도 하다.그것이 모자이크를 비잔틴 미술의 주요 경향으로 보게 하는 이유다.공화국 출범 이후 국제사회의 기독교회 환원 요구에 터키는 하기아 소피아에서의 모든 종교적 요구를 금지해 관리하고 있다.1930년대 이래 하기아 소피아는 그렇게 더 이상 모스크가 아닌 박물관이 되었고 중세 모자이크의 상당부분 복원과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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