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최근 경북 예천군의회의 막장 해외연수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과 유권자의 마음이 씁쓸하기 짝이 없다.예천군의회는 지난해 12월 미국과 캐나다 연수를 진행하던 중 한 의원이 가이드를 폭행하고,또 다른 의원은 접대부가 있는 유흥업소 안내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지난 1995년 전면 민선자치가 시작된 지도 20년이 지났다.지방자치가 유년기를 지나 뿌리를 내려야 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 사건은 한 지방의회 의원들의 일탈로 규정,지탄의 대상으로 삼는 것만으로 끝내기 어렵게 됐다.가뜩이나 예천군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1인당 442만원,총 6188만원의 혈세로 이뤄진 외유성 여행이라는 점이 대비되면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지방의회가 과연 그동안 연륜에 걸맞은 내실을 갖추고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해온 것인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지난 11일 이번 사태와 관련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전국의 유권자 5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싸늘한 민심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지방의원 해외연수 전면금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0.4%가 찬성했다.반대는 26.3%에 지나지 않았다.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지방의원 해외연수를 전면금지 해야 한다고 봤다.절제와 분별을 잃은 지방의원들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를 만들었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지방의회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있다.지방의회는 집행부와 더불어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다.한 쪽만의 힘으로 수레는 굴러갈 수 없고 그 기능을 하기 어렵다.양쪽의 수레바퀴가 제자리에서 정상적으로 굴러가야 한다.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고 민생이 안정되고 삶이 달라지는데 의회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이것이 의회의 존재이유다.

이번 예천군의회 사태는 지방의회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문제가 된 예천군의회와 같은 기초의회는 민생 현장과 가장 근접해 있다.가장 민감하게 민심과 접촉하고 그 결과를 의정에 반영해야 한다.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이처럼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져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성난 민심은 의원 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예천군의회만의 특별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의회가 민심을 어루만지기 보다는 좌절과 분노를 안기다니 말문을 닫게 한다.이번 사태는 지방의원들이 자기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자질과 공인의식을 갖고 있는가?이런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직분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공무(公務)와 공금(公金)에 대한 어떤 분별도 찾아볼 수 없다.사태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이런 의회가 집행부의 독주를 적절하게 견제·감시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주민 혈세가 제대로 쓰여 지고 있는지 ‘감시견(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이번 사태가 그 답을 한 셈이다.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그 치부가 드러난 것은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안팎의 주시를 받게 됐고 성찰과 변화의 과정을 거쳐 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이것이 이번 사태의 역설이다.

과연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예천군의회가 없다고 할 것인가.적발되지 않은 상습음주 운전자처럼 위험한 질주를 계속하는 제2,제3의 예천군의회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이번처럼 밖으로 곪아터지지는 않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의회라면 이 또한 또 다른 예천군의회나 다름없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방의회가 크게 달라지기를 바란다.주민과 유권자도 분노와 절망을 넘어 그동안 어떤 투표를 해왔는지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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