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동물의 죽음이 인간에 남긴 무거운 질문
원칙없는 안락사 케어사태
시청률 위한 자극적 보도 유감
외국 관광상품 ‘가마우지 사냥’
도내 산천어축제·꽁꽁축제도
생명학대·환경파괴 잇단 논쟁

유강하의대중문화평론.jpg

‘케어’ 사태로 온통 시끌시끌하다.후원금을 받아 활동하는 박소연 대표가 후원금을 횡령하고,위탁된 동물들을 원칙 없이 안락사했다는 뉴스를 시작으로,충격적인 제보는 현재진행형이다.이 사이에서 사실과 소문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당사자인 박소연 대표는 억울하다고 하지만,사건의 진위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선명해질 것 같다.

이 뉴스를 보면서 터질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겼다.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후원금 횡령인가,아니면 원칙 없는 안락사인가?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문제인가?이 사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근본적인 문제는 후원금 횡령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내가 후원자고,강아지를 보호해야 할 후원금이 오히려 안락사하는 데 쓰였다면,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나의 의문은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 후원금을 내도록 하게 만든 동기가 무엇이었는가에 있다.

동물학대에 관한 사건과 비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텔레비전을 켜면,‘TV동물농장’,‘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 동물에 관한 프로그램이 많다.동물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인데도,시청률과 댓글,조회수는 올라간다.하지만 개 행동 교정 프로그램,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개들은 버려지고,살처분되고 강제 번식에 내몰리고 있다.개를 비롯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상업화되고,동물들이 시청률을 견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된 상황에서 케어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 이때 미디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기보다는 시청률이나 조회수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람들의 분노가 클수록 관련된 뉴스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편집되는 것 같다.개를 안고 환하게 웃는 박 대표의 사진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진 땅에서 나오는 개들의 시신을 교차 편집한 영상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면,보다 균형 잡히고 엄격한 태도로 이 사건을 분석해서 보도해야 했을 것이다.하지만 대부분의 보도는 이미 기사화된 내용에 한두 가지 소식이나 인터뷰를 덧붙여 보다 자극적으로 보도하며 시청률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모든 미디어와 언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이런 비극조차도 시청률 경쟁에 시장성 높은 좋은 콘텐츠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케어’ 사태 자체보다,이러한 비극조차 상업화의 대상이 된다는 게,사실 더 무섭고 슬프다.

그런데 우리가 ‘개’라는 동물을 둘러싼 문제에 집중하고,분노를 표현하는 동안 또 다른 동물은 환호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대표적인 지역축제이자 세계적인 축제로 부상한 산천어축제,꽁꽁축제의 주인공은 산천어와 송어다.이들은 겨울축제를 위해 양식장에서 길러진다.축제를 위해 인공 수정된 뒤,축제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이미 많은 수가 폐사하고,축제 동안에는 무차별적으로 포획된다.꽁꽁축제의 송어는 인삼을 먹여 키워진다고 한다.그렇게 키워진 송어는 ‘항산화 효과가 높고,항생제 없이 키워져서 안전하고 식감이 탁월’한 사냥감이 된다.축제에 참가한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손맛’과 식감을 칭찬한다.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물고기들을 두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다.물고기의 고통,여기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는 ‘성공적인 지역축제’라는 수식어에 파묻히고 만다.

얼마 전 외국 여행에서 가마우지 사냥을 처음 보았다.뛰어난 잠수실력과 사냥실력을 가진 가마우지는 오랜 동안 ‘가마우지 사냥’의 도구로 이용되어왔다.우리나라에서는 쇠가마우지를 보호해양생물로 지정하고 있지만,여전히 많은 나라에서는 가마우지 사냥을 하고 있다.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가마우지는 사람들 앞에서 종일 물고기 사냥을 한다.몸에 줄이 묶여 멀리 날아갈 수 없는 가마우지는 계속해서 물속으로 던져졌고,가마우지의 목으로 삼켜진 물고기는 어부들의 날렵한 손놀림에 의해 끊임없이 토해졌다.이 잔인한 사냥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플래시를 터뜨렸다.이 별난 사냥이 포함되어 있기에,관광 상품은 가격이 높았다.

그들이 가마우지를 상품화해서 잔인하게 다루는 동안,우리나라에서는 쇠가마우지를 보호해양생물로 지정했다.하지만 이 사실이 우리 문화적 수준의 우월함을 대표하지는 못한다.우리가 쇠가마우지를 지정하여 보호하는 사이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살처분과 동물에 대한 안락사가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낚시 축제가 성황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생명 혹은 그들의 죽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개와 산천어와 가마우지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동물의 죽음도 있지만,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죽어가는 동물도 있다.보호해야 할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차이가 ‘인간과의 친연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또는 경제적 잣대가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이건 합당한 기준인가?경제발전,지역경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자는 게 아니다.최근의 ‘케어’ 사태와 낚시축제와,관광 상품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이르렀다.그들은 죄가 없다.개들도,물고기들도,새들도.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던져진다.동물학대,잔인한 인간성,생명존중,환경보호,동물 콘텐츠 상품화 등 묵은 문제들을 새삼스럽게 들춰내 비판하기보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논쟁거리들을 여전히 내장하고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인간과 동물,삶과 죽음에 관한 무거운 단상과 ‘반려’해야 한다는 순간이,아프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 등이 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