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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애국,시름과 위업(偉業)

정일남 2019년 01월 28일 월요일
▲ 정일남 시인
▲ 정일남 시인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싶은 시름하는 적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이순신의 시(詩)를 읊어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달 밝은 밤에 망루에 혼자 앉아 큰칼 허리에 차고 나라 잃은 슬픔에 젖어있을 때 어디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애간장을 들끓게 한 이 시조는 장군으로서의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육지의 전세는 패했으나 해전을 담당한 장군의 해전은 승승장구했다.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반드시 영웅이 나타났다.세계 해군전사(海軍戰史)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업은 빛났다.그 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이 시점에서 우린 광화문에 우뚝 서 있는 장군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조선의 사색당파는 오늘의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서로 권력의 실세가 되려고 온갖 추악한 만행이 나라를 망치게 했다.권세를 장악한 당파는 임금을 손아귀에 넣었고 그렇지 못한 반대파는 유배길에 올랐다.이런 권력 다툼은 임진왜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율곡 선생이 미래를 예견하고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전란 중에서도 권력을 쥔 세력은 이순신(李舜臣) 죽이기였다.왜군을 해전에서 격파한 이순신을 두고 서인(西人) 윤근수(尹根壽)는 선조께 고한다.‘이순신 보다 원균(元均)이 용맹을 떨쳐 공적이 더 크나이다’이런 거짓 상소는 원균의 공이 빈약한데 반해 공이 많은 이순신을 죽이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사실을 왜곡 보고한 상소에 이순신은 고초를 겪었다.

뿐만이 아니다.조정에서 전황 파악에 나선 서인의 남이신이 전라도에 들어서자 백성들이 남이신을 가로막았다.백성들은 이순신의 원통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남이신은 전황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왜장 가등청정이 섬에 7일 간 머물고 있었으나 이순신은 출정해 사로잡지 않았다고 조정에 거짓 보고한다.이 거짓 보고를 접한 선조는 가등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금부로 끌어올린다.

이순신은 32일간 의금부에서 고문으로 참수형에 처하게 된다.이순신을 위해 아무도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다행히 이순신을 살리게 한 이는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었다.이 무렵 원균이 이끈 200척의 배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했다.다급한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이순신은 말한다.“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그의 기적과도 같은 ‘명랑해전’은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공적을 인정치 않고 원균을 1등 공신에 책봉한다.간신들 때문이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湯 血染山河·단칼에 적의 무리를 쓸어버리니,산과 강물이 핏빛으로 물드는구나).이 명문(名文)은 이순신 장검에 새겨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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