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광 복 논설위원

 2일, 일주일전 월요일 오후 서울 조계사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환경운동가 최열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정계 노동계 시민단체 대표 등과 여럿이 함께 있었다.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등이 벌인 '3보(步)1배(拜)'에 대한 경과보고를 막 마친 뒤였다. 그는 "과거 시화호 간척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새만금 간척사업도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특별결의 채택운동을 전개하고, 국회의원 삼보일배단도 조직하겠다고 했다. 노무현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더욱 힘을 주었다.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 공동대표인 그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기실 강원도 산(産)치고 그이만큼 세상에 뜨는 사람도 없다. 국회의원 공천, 장관 제의를 고사했다는 후문 때문에 좀 미련한 사람인가 했지만, 나는 그 바람에 그가 오로지 환경인 대접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를 강원도 사람이라고 강조한 것을 "아차" 한 것은 택시에서 '새만금 조기완공 촉구' 집회 소식을 들었을 때다. 전북도 공무원 노조원 4천500명이 사표를 냄으로써 새만금사업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불식시키겠다는 기자회견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현욱 지사가 삭발을 하고, 한 시의원이 혈서를 썼던 이튿날 서울 여의도의 전북도민 궐기대회도 예고되고 있었다. 노조 대표는 "환경론자들 반대로 새만금이 중단되면 정권 퇴진 운동으로 가겠다"고 하고 있었다. 100일 밖에 안 된 정권을 놓고 퇴진을 운운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가 아니다.
 동계올림픽 유치권 때문에 전북 사람들은 강원도에 약간 감정이 있다. 그쪽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반대하는 단체 대표가 하필 강원도 사람이라는 것도 불쾌할지 모른다. "가만 있자. 최열씨가 원래 태생은 경북인가, 대구이지, 아마." 약간 난처한 상상을 택시기사가 깨뜨렸다.
 "오늘 기자회견 하는 걸 봐도 그래요. 지금 경제성장을 주장할 마당에 끝까지 경제안정이라고만 합디다. 나 참. 경제가 이게 뭡니까. 1시간 기다려서 겨우 1천600원 짜리 손님(당신) 태웠어요. 죄송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겨야 할 판에 알맹이가 없어요." 하긴 나는 노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들어봐야 뻔하다면 듣지 않았다.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깨끗하다는 사람이 뭐 그리 땅 문제가 복잡해요?" 정말 거제도에서 용인까지 왔다 갔다 하는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땅 문제는 복잡하다.
 1시간도 안 되는 사이 3건의 사건에 내가 단단히 '분위기 감염'이 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세종문화회관 커피숍에서, 내가 알고 있기로는 분명히 '반노(反盧)파'인 한 인사를 만났을 때다. 나는 그가 매우 기분 좋아할 말을 했다. "노무현 찍는다고 했더니 우리아버지가 때려죽인다고 하는 걸, 별의 별 얘기로 겨우 설득했는데, 나 이제 맞아 죽게 됐어요 하던 젊은이를 며칠 전 만났는데, 제가 요새 그 꼴이 됐습니다."
 그는 웃지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한 분위기 타는 사람이군." 요즘 입 달린 사람 말 안 하는 사람 어디 있고, 글줄 쓸 줄 아는 사람 글 안 쓰는 사람 보았느냐는 것이다. 집음기로 온 나라 소음을 잡아 모을 수 있다면 아마 개천이래 가장 요즘이 시끄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그러니 소인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요즘 빗줄기 같은 대(對)대통령 충언 직언대열에 부부뇌동, 경거망동, 만장일치, 아부뇌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강원도 사투리 쓰는 개그맨 버전대로 '분위기 다운'이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를 그는 한반도 전운의 뇌관이 되고 있는 북핵에 두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밖에서 보는 한국정세는 우리처럼 여유 만만하지 않다. 북경 3자 회담 직전 찰머스 존슨 교수가 내놓은 정세보고서는 차라리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는 "비록 미국과 북한 사이에 불가침 조약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9·11 테러를 사전경고 한 책 '불로우백(Blowback)'의 저자다. 한국전에 참가했던 친한파이며, 미국 내 동북아연구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지한파이다.
 그가 부시의 세계 전략 테이블에 포진하고 있는 매파이거나 비딱한 호전주의자라면 그의 말을 평가절하해도 괜찮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한반도 주변의 이상기류를 깡그리 감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감지커녕 우린 지금 천하태평 유아독존, 케 세라 세라다. 2003년 6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 국민인 체, 솔직히 주어진 권리를 훨씬 초과해 구가하고 있다. 다시 분위기를 쇄신 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그런 사실들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대통령에겐 말을 아끼라고 하면서, 반미로 시작해서 국정원장, 화물파업, 나이스, 새만금, 굴욕외교 심지어 고향 촌로가 대신 "됐다, 마 이제 고마 하이소"라고 항복해버린 측근비리에 이르기까지 마치 퀴즈게임 하듯 쉴새없이 말 좀 하라고 채근하는,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도 못해 본 닦달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은 대통령에게 숙고한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취임 100일 후 일주일이 지나 또 월요일이다. 나는 그날 이후 정국에 관한 한 말을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함광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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