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만난 엉터리 한국어, 우리말에 대한 관심 필요하다
수출(출구)·맞게매표소(개인매표소)
타락 조심(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
번역기계에 의존한 결과에 웃음
사람 손길이 가끔은 더 정확해
나는 얼마나 제대로 쓸 줄 알까

외국어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고 높다.몇 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셀럽들의 능력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종종 기사화되기도 한다.그 뒤에는 ‘언어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외국어를 잘하는 사람,특히 몇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봤을 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랜 동안 외국어와 외국문학을 공부해왔다.외국문학을 배우기 위해,상당한 시간을 들어 외국어를 공부했다.생각해보면,나는 국어,영어,수학이 주요한 과목이 된 순간부터 줄곧 외국어 공부를 해왔다.입시를 위해서 교과서를 외우고,토익과 토플시험을 치르기 위해 낯선 단어를 외우고,듣고,따라 읽었다.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외국인과 대화도 하고,외국어로 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여전히 외국어는 편안하지 않다.외국어를 접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외국어에 대한 생각도 많아진다.
 

▲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한국어 오류 표기들.
▲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한국어 오류 표기들.

나는 얼마 전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중국 여행사에서는 최근에 개발된 곳이라며,‘은자암’(銀子巖)이라는 동굴 탐방을 제안했다.동굴 내부가 은처럼 환하게 반짝거린다는 동굴 앞에는 관광안내 표지판이 있었고,표지판에는 중국어와 영어,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었다.(일본어는 없었다.예전에는 중국어,영어,일본어가 일반적이었지만,최근에는 일본어가 있던 자리를 한국어가 대신하고 있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국어 표기에 대한 감사와 일본어가 없는 표지판에 대한 신기함도 잠시,나는 외국어 표지판 앞에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뜻이야?” 표지판 위에 얌전히 표기된 “수출,맞게매표소,구멍중,구멍에,화장실 내리 떨어지다”와 같은 번역어 앞에서,나는 그냥 크게 웃었다.

번역은 이렇게 되어야 했다.“수출 → 출구” “맞게매표소 → 개인 이용객 매표소” “팀매표소 → 단체 이용객 매표소” “구멍중 → 동굴 출구” “구멍에 → 동굴 입구” “타락 조심하세요 → 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시오.” “화장실 내리 떨어지다 → 화장실, 아래쪽으로 가시오.”

큰 웃음을 동반한 번역의 오류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의 자문 없이,그저 기계번역에 의존한 결과일 거라고 추측했다.안내 표지판의 번역은 한국어를 1년만 배워도 가능한 수준의 번역이었다.하지만 기계는 인지하지 못했다.외국어 관광 안내 표지판에 “타락하지 마시오.구멍중,구멍에”와 같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계번역의 오류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이런 엉터리 기계번역의 오류를 보고 있자니,사람들이 SNS를 통해 짧게 주고받는 언어,이모티콘으로 주고받는 중층적이고 다의적인 표현들을 기계가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알파고는 이세돌과 커제를 꺾었지만,인공지능이 자간과 행간에 숨겨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어쩌면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특정 국가의 엉터리로 번역된 외국어표지판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외국어표지판의 오류는 중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이번 주만 하더라도,우리나라의 한 매체에서는 서울 도처에서 발견되는 엉터리 외국어 표지판의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전 국민이 한국어와 동시에 영어를 배우는 나라,한번쯤 영어학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국어 교육이 강조되는 곳에서 발생한 오류들,심각성의 크기로 따지자면 우리가 더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는 ‘뜻밖의’ 번역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외국어에 관해서만큼은 중국이 부러울 때가 있다.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요즈음은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진행을 하기도 하지만,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 외국인이 등장하는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해당 국가의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대체로 영어,일본어,러시아어,중국어가 대부분이다).이런 장면이 방송되고 나면 해당 배우의 외국어 발음에 대한 품평이 뒤따르고,그것은 종종 연기력과 결부되어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내가 중국 드라마에서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백인이 중국어 대사를 말하는 걸 처음 본 순간,이건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서양 사람이 중국어로 대사를 하네.” “중국에서 중국어로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그 자연스러운 대답이 부러웠다.그래서 그들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중국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거리에서 중국 사람들과 마주칠 때 여전히 가끔 부럽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어는 의사소통의 도구보다는 평가의 기준,자기과시의 조건이 되어왔던 것 같다.물론 외국의 이론과 문화를 직접 느끼고 지식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그래서 외국어는 다른 국적 또는 다른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인데도,외국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 지낸다.그렇지만 한켠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나는 얼마나 한국어를 제대로 말하고 쓸 줄 안다고 할 수 있을까.가까운 중국 여행에서 엉터리 외국어 안내 표지판 앞에서,쓸데없는 생각이 길어졌다.어쩌면 지극히 사소하고 안온한 결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표지판에 새겨진 국적 없는 번역어들을 보면,여러 생각에 잠기게 된다.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길이 가끔은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또한 외국어에 대한 열정도 좋지만,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여행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 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쓰기와문화리텔링'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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