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장·광복군 부사령관 역임했지만, 北정권 수립 관여 결격 사유
혁신위, 20년 미만 軍 복무자 국립묘지 안장 폐지도 권고

▲ 독립운동 시절 김원봉[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 독립운동 시절 김원봉[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영화 ‘암살’과 ‘밀정’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무장 독립운동 리더로 그려졌던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할지 여부가 논쟁 거리로 부상할 조짐이다.

국가보훈처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가 광복군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김원봉 의열단 단장을 올해 3·1절 계기에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권고했지만, 보훈처는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이 독립운동에 앞장선 것은 사실이나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 현행 기준으로는 독립유공자 지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일 보훈처가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실에 제출한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에 따르면, 혁신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낸 의열단 단장 김원봉조차 독립유공자로 대우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보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독립운동에 대한 최종적 평가 기준은 1945년 8월 15일 시점”이라면서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독립유공자로 평가돼야 할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정 서훈을 함으로써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며 사실상 올해 3·1절 계기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 보훈처는 김원봉에 대한 3·1절 계기 독립유공자 서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행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으로는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은 선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훈처는 지난해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을 개정해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도 포상할 수 있도록 했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1898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한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그러나 1948년 월북한 이후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같은 해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이후로도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지만,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혁신위는 김일성 체제에서 정치적 이유로 숙청당한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원봉은 2015년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2016년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서 이병헌이 각각 연기해 국민들에게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면 북한 정권 출범에 관여한 인물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훈처는 신중한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행 기준으로는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며 “혁신위의 권고를 따르기 위해서는 심사기준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 여론을 고려해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편, 혁신위는 10년 이상 20년 미만 군 복무자에게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부여하는 규정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국립묘지나 정부 및 지자체가 관리하는 묘역의 안장 자격은 독립유공자, 전사자, 순직자, 참전유공자, 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자, 민주화 운동 사망자, 사회 공헌 사망자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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