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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

이채린 2019년 02월 18일 월요일
▲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1학년 아이들이 한 해를 잘 살아내고 이제 2학년으로 올라간다.자리에 앉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물 마시고 싶어요’라고 앞 다투어 말하곤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40분을 거뜬히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줄넘기 한 번을 못 넘던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열심히 연습을 하더니 2단 뛰기도 하고 줄넘기 마라톤도 너끈하다.자기 옷,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더니 이제는 야무지게 물건을 챙길 줄 안다.참 많이 자랐다.

학교에 들어와서 ㄱ,ㄴ,ㄷ 한글부터 차근차근 배웠다.미리 어린이집이나 부모님에게 배우지 않은 아이들도 천천히 배우고 익혀서 낱말을 읽고 썼다.‘나비’,‘가지’처럼 통글자만 쓸 줄 알던 아이들이 방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소리나는 대로 쓰는 글자도 여럿이지만 자기 뜻을 밝혀서 글을 쓰는 기쁨에 빠졌다.방학에도 여럿이 빠뜨리지 않고 일기를 쓰고 2학기에는 거의 날마다 일기를 썼다.힘들면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빠지는 날 없이 일기를 꾸준히 썼다.어른인 나도 오히려 쓰지 못한 날이 많은데 여덟 살 아이들의 꾸준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아이들 안에 이미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가까이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1학년의 성장은 눈이 부시다.자라는 속도가 빠른 아이도,느린 아이도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폼’(호저초 1학년 김도훈·2018년 9월 30일 일요일) “엄마,이모,형,나 4명이 가을 옷을 사려고 이천 아울렛에 갔다.먼저 점심을 먹고 이모가 초코라떼를 사주었다.초코라떼를 먹으면서 걸어가는데 ‘폼’나 보였다.바람이 부니까 더욱 폼나 보였다.”

‘서리를 봤다’(호저초 1학년 김다빈·2018년 11월 1일 목요일) “서리가 하얗다.차가워다(웠다).가가이서(가까이서) 보니 뽀족했다.서리가 녹았다.물방울이 매처다(맺혔다).하야면서 예뻐다(예뻤다).눈이다.”

‘동태찌개를 먹었다’(호저초 1학년 오은정·2018년 11월 8일 목요일)“밤에 엄마만 마트에 가서 동태찌개를 사오셨다.맛있었다.티비를 보면서 먹었다.나는 하나 먹었다.아빠가 오셔서 아빠랑 같이 먹었다.가족이랑 같이 먹으니까 행복했다.매일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동태찌개를 다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잠을 잤다.다음에 또 먹고 싶다.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독감’(호저초 1학년 박다솔·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돌봄교실에서 열을 재반는데(재봤는데) 38.2도 여다(였다).그레서(그래서) 돌봄선생님이 엄마랑 전화를 했다.김영석 이비후과(이비인후과)에서 진찰을 했다.사람이 너무 많았다.드디어 우리 차레여다(차례였다).긴 면봉으로 코 끄태까지(끝에까지) 넣다(넣었다).아파다(아팠다).많이 참아다(참았다).그레서(그래서) 엄마가 쪼쪼니를 사주셨다.간호 엄마가 안 와다(왔다).심심했다.엄마가 와다(왔다).그레서(그래서) 약이 너무 많아다(많았다).독감이 걸려서 심심해도 형아들이 장난감을 비여주서(빌려줘서)안 심심했다.”

이런 아이들의 자람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 문집을 만들었다.날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일기를 엮었다.분홍색 반팔을 입은 아이들 사진을 앞에 두고 문집 제목은 아이가 일기에 쓴 ‘이런 저런 일이 많은 하루’라 붙였다.아이들에게 문집을 나누어 주니 코를 박고 본다.같은 모둠 친구들과 입을 맞추어 소리내어 글을 읽기도 한다.참 예쁘다.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너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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