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개통된 서울과 원산간 철도인 경원선이 완공되면서 함경도의 대표적 민요 ‘신고산 타령(원제 어랑타령)’도 생겼다.이 노래 도입부인 “신고산이 우루루/함흥 차 가는 소리에/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싼다”는 구절은 언뜻 들으면 마치 ‘신고산(山)’이 우루루 무너지는 것으로 들리지만,실제로는 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고산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고산은 경원선이 지나가는 원산 인근에 위치해 있었는데,이 마을에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고산마을은 ‘구(舊)고산’이 됐고,기차역이 생긴 마을은 ‘신(新)고산’이 됐다.요즘말로 역세권이 된 신고산에 ‘우루루’ 들리는 소리는 바로 신고산역의 기차소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신고산역에서 들리는 우루루 기차소리에 왜 구고산 큰애기는 반봇짐을 쌌을까.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소달구지에 싣거나 등짐을 지고 꼬불꼬불 길을 가야했던 시절,친척집 방문이라도 할라치면 괴나리 봇짐에 며칠을 걸어야 했던 시절,철도는 엄청난 양의 곡식과 생활물품을 빠른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특히 철도가 놓이고 역이 들어선 지역은 신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어 삶의 변화가 엄청났다.우루루 기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산 마을에서 집안일만 하던 시골처녀의 마음이 들뜨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구고산 큰애기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경원선은 남북의 연결했던 다른 철도와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1945년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분단으로 시작된 단절은 6·25 전쟁 이후부터는 더이상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리는 기차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지금도 임진각에 남아있는 철도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과 함께 멈춰선 녹슨 기차가 분단의 한을 품고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생생한 역사의 순간들이 펼쳐진다.우리나라 최초의 철길이었던 경인선에서부터 남북을 연결하는 경원선과 경의선,동해선의 차창밖 풍경 역시 숱한 역사의 순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마치 역사는 끝없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기차가 끝없는 레일 위를 달리다가도 역에 잠시 정차하면 사람들은 내리고 타기를 반복한다.그리고 기차가 종착역에 닿으면 멈추기도 하지만,이내 그 열차는 또다른 노선으로 끝없이 레일 위를 달린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로 인해 남북간 끊어졌던 철길이 다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새해를 시작했다.강릉에서 멈춰있는 동해선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동해선은 부산에서 강릉과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철길이다.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길이기도 하다.아직도 연결되지 않고 있는 강릉-제진간 동해북부선을 하루빨리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동해북부선이 놓여지는 강원도 뿐만 아니라 서울과 부산 등 전국적으로 동해북부선 연결을 위한 침목기금 캠페인이 한창이다.70년 침묵을 깨는 침목을 통해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끝없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타게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chonns@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