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시들해진 커피사랑, 2차 세계대전 후 부활
17세기 커피하우스 폐쇄 성명
대중 항의로 효력 미미 되레 융성
영국 차 문화 왕실서부터 시작

지난주에 이어 홍차의 나라 영국의 커피와 홍차이야기다.17세기 중반 찰스 2세(Charles II)는 커피하우스가 음모와 모함,혁명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성명을 내고 모든 커피하우스를 폐쇄한다고 선포한다.그러나 일반 대중의 거센 항의에 부딪치게 되고,그 성명은 효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철회되고 만다.그 반작용으로 커피하우스는 더욱 융성해지는 계기가 된다.또한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을 빼앗기고 있다는 여성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커피하우스는 커피애호가들의 인기를 차지하게 된다.아마도 여성들의 그러한 탄원은 남성들만 출입을 허용하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어쨌거나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금지되었던 여성들의 커피하우스 출입이 점차 허용된다는 것이다.

▲ 티타임 메뉴
▲ 티타임 메뉴
그동안 유지해왔던 영국인들의 커피사랑은 18세기에 이르러 시들해진다.그 원인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와는 달리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 식민지가 없었고,따라서 커피를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중국의 차로 눈을 돌리면서 커피를 멀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들했던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그것은 바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커피 판매 덕분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커피를 판매하는 바(Bar) 형태의 커피하우스들이 런던 곳곳에 들어서면서 영국인들의 커피에 대한 미각을 되살리게 된다.이후 스타벅스(Starbucks)와 같은 대형 전문 프랜차이즈와 접하면서 커피에 대한 뉴 시대를 예고한다.

▲ 영국의 카페
▲ 영국의 카페
영국하면 홍차를 빼 놓을 수가 없다.사실 커피하우스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홍차도 같이 판매되고 있었다.그러나 커피에 밀렸고,다시 차의 시대를 열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17세기 중반 차를 즐겨마시던 포르투갈의 공주가 찰스 2세에게 시집을 오면서 차 문화의 기반이 만들어진다.찰스 2세의 커피하우스 폐쇄령은 공주가 시집온 지 10여년 후의 일로 왕실의 차 문화와도 연관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영국의 차 문화는 왕실에서 시작이 되어 귀족사회,서민사회로 확대되어 간다.

영국은 19세기 중반 중국에서 차 씨앗을 들여와 식민지인 인도 다즐링(Darjeeling) 지역에 심어 재배에 성공한다.여기에서 재배된 홍차를 다즐링티(Darjeeling Tea)라 부른다.이후 인도 인근지역인 실론(Ceylon,현 Sri Lanka)을 식민지로 만들고,거기에 차를 심어 실론티(Ceylon Tea)를 탄생시킨다.이처럼 차 생산의 기반을 다짐으로서 홍차의 나라가 된 것이다.아침,점심,저녁 식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홍차다.하루 중 오후 4~5시 쯤에 즐기는 ‘애프터눈 티타임(Afternoon Tea Time)’도 있다.이 티타임에서는 홍차나 밀크 티(Milk Tea)에 케이크 등 다과를 갖춰 먹으면서 왕실에서 시작된 티 문화답게 넉넉하고 기품있는 시간을 즐긴다.오늘은 좋은 분들과 티타임 한번 가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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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섭 교수 약력

△한림성심대 교수 △한국커피협회 부회장 △한국대학영어교육학회 회장 △한국중앙영어영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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