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성 변호사
▲ 박찬성 변호사
새 학기가 찾아온다.캠퍼스는 새내기들로 다시 북적이게 될 것이다.올해는 기묘한 대학 내 악습들과 폭력으로 얼룩진 기사들을 보지 않길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교육부가 ‘학내 건전문화’ 조성을 위한 자체적 사전교육 진행 등을 권고하고,경찰청에서 대학 소재지 관할 경찰서에 ‘대학 내 불법행위 수사팀’까지 운영했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필자도 2014년부터 수년 간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대학 내 인권침해 사건들을 다루었고 현재도 고려대 인권센터 등의 자문위원으로 대학 내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데,해는 바뀌어도 문제는 여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로 마음이 못내 무겁다.

대학은 자치적 학문공동체이지만 대학 역시 이 사회의 한 구성부분인 만큼 충분한 자정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외부로부터 일정한 감독과 통제,조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할는지 모른다.올해는 특별수사팀까지 꾸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그렇더라도 구조의 손길을 갈구하는 목소리를 경찰 등 외부기관이 외면해 버리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타인의 횡포에 힘겨워 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될 수만 있다면 경찰 등 대학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는 것도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대학생 사이의 가혹행위라는 말은 참으로 기이하다.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이 살아 있어야 할 대학은 그 어느 곳보다도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망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동등한 관계 하에서라면 가혹행위는 있을 수 없다.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은 오직 상호존중뿐이다.

또 가혹행위의 가해 당사자들도 우리 사회의 이른바 ‘갑질’ 행태들,특히 종종 기사화되는 대학 교원들의 ‘갑질’ 행태들에 대해서는 분노할 것이다.그런데 타인의 ‘갑질’에는 노여워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행태를 되돌아볼 줄은 모른다면 이를 어찌 대학의 교양인이라 할 수 있는가.이 뿐만이 아니다.세상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가 대학 내에서 때때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대학은 여전히 이 사회 지성의 보루이다.대학이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이 ‘갑질’과 가혹행위로 병들어 있다면 대학이 존립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가혹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이라는 말도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대학 당국 및 책임 있는 보직자들의 관리·감독과 지도가 현 상황에서 불필요하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지성’과 ‘교양’이라는 것이 ‘관리·감독’이라는 개념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졸업 후의 엄혹한 현실이 학생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토익점수와 취업준비가 이미 ‘대세’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지성이나 교양 운운하는 소리가 물정모르는 한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하지만 그럼에도 대학은 ‘자기규율’과 ‘자기통제’의 공간이어야 마땅하다.대학은 유아들이 아닌,성숙해 나가는 시민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폭력 근절을 위한 각 대학 당국의 노력은 소중하다.그러나 학생들 스스로의 자각과 반성,자정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무의미할 것이다.스스로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져 보자.‘나’는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폭군’이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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