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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마당]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한 역사적 의미

정인수 2019년 02월 25일 월요일
▲ 정인수 전 도의원
▲ 정인수 전 도의원
대한제국은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고 합병되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치욕을 당하자 분노한 민족은 저항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다.100년 전 3·1운동은 간악한 일제 식민지 질곡에서 우리 민족이 봉기해 ‘독립선언서’ 발표와 민족의 자주독립과 자존심을 세계만방에 알렸던 역사적 대사건이다.일제에 맞섰던 많은 열사,지사,의사들을 통틀어 선열(先烈)이라고 칭한다.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여겨야 했고 절의를 지키며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다.민영환,최익현,황현 등 선비들은 의분(義憤)을 참지 못해 자결 순국을 선택했다.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선열들의 희생과 후광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섬멸한 영웅 김좌진 장군,봉오동 전투에서 대승하여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홍범도 장군,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일본에 건너가 천황을 폭살(爆殺)하려다 실패하고 일본 감옥에서 장장 22년을 살아야 했던 박열 지사,중국 할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한 안중근의사의 의로운 행동은 언제나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에서 궁성으로 돌아가는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암살에 실패하고 사형선고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이어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목숨을 걸고 행한 윤봉길 의사를 보자.이 분들은 모두 김구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 소속의 열혈청년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왕 생일날인 천장절,축하식이 열리는 홍커우 공원 행사장에 1만여 명의 축하객이 모여들었다.축하식에서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일본 기미가요 합창이 거의 끝날 무렵 별안간 폭음이 진동하고 식단이 하얀 연기로 뒤덮여지는 순간 단상에 일렬로 서있던 시라카와 대장 이하 일본 장성들과 고위층이 일시에 쓰러져 사상(死傷) 당했다.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투척이 명중한 것이었다.1932년 4월29일의 일이다.현장에서 거사 직후 자살하려다 실패한 윤 의사는 일본 경찰에 의해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 끝에 군법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형으로 이승을 하직한다.오호라! 유해는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치욕을 당해야했으니 원통하기 그지없다.이때 순국한 윤 의사의 나이는 25세,꽃다운 나이였다.이때 선열들은 오로지 ‘대한독립’만이 최고의 패러다임이었던 것이다.필자 또한 젊은 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롤모델로 삼았다.내 평생을 통해 정립된 민족관,역사관,가치관 등 사상이 바로 일제에 항거했던 선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편,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일제에 빌붙어 관작을 누리며 호의호식했던 을사오적 박제순,이완용,이지용,이근택,권중현의 오명(汚名)은 가치관이 전도되고 혼탁한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과 대비해 곱씹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요즈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독도 영유권 문제,강제징용 일본기업책임론,해상초계기 도발 문제 등으로 첨예화한 한·일 양국 상황을 보면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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