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생활 깊숙이 파고든 ‘식민 잔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한 세기를 훌쩍 뛰어 넘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시작된 일제의 침탈은 해방이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지난 150년 동안 우리의 정치·경제·문화 전 영역에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식민잔재 또는 일제 잔재의 폐해는 언어와 풍습에 국한되지 않는다.기업과 조직을 규율하고 개인의 행동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군대식 수직 문화와 나이,입사 순서를 따지는 서열문화가 그 것.

일과 생활언어에서도 일제의 잔재가 묻어난다.‘노가다(막노동)’,‘기스(흠집)’,‘공구리(콘크리트)’,‘나라시(평탄화 작업)’에서부터 우라가에스(뒤집다,변경하다)에서 파생된‘우라까이(기사의 내용과 핵심을 돌려 씀)’,‘야마(기사의 핵심 내용)’등이 대표적.어릴 때 즐겨 부르며 놀았던 ‘쎄쎄쎄’ 놀이도 ‘손을 마주대다’라는 뜻의 일본어 ‘셋스루’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제사때 올리는 정종과 청주도 일제의 잔재이며 장례문화도 영향을 받았다.상주가 들던 지팡이가 완장으로 바뀐 게 한 예.

가장 무서운 건 ‘식민지 후유증’.학자와 연구자들은 식민 잔재의 대표적인 폐해로 한국인의 의식에 깊게 뿌리박힌 기회주의와 정경유착,부정부패를 꼽는다.굴욕을 받지 않으려면 성공해야 한다는 욕망이 기회주의로 나타나고,이는 다시 ‘너부터 성공해라’,‘너와 가족이 먼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일제시대에 강요된 성공양식이 ‘식민지 유산’으로 계승된 셈이다.식민통치에서 조성된 ‘불안한 생존 환경’이 돈과 권력을 향한 왜곡된 집념으로 나타난 결과.

‘탈식민화’는 요원할까.연구자들은 탈식민화의 방법으로 ‘구조화된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의식’을 요구하고 있으나 개인의 희생이 수반돼 쉽지 않다.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거나 묵인할 수는 없는 노릇.우리의 뇌리에 깊게 박힌 전근대성을 청산하지 못하면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기회주의적 속성은 권력과 돈과 결합해 사회문화적시스템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엽전은 안 돼’라는 자기비하적 트라우마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고.결국 우리의 전통과 문화,정체성을 찾기 위해선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길 밖에 없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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