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매거진 OFF] 4·1횡성군민 만세운동
천도교 횡성대교구 주도 실행
1919년 장날 독립선언서 낭독
원주·영월·평창 확산 기폭제
올해 100주년 기념 전시·토크쇼
기념공원 메모리얼파크로 조성

▲ 횡성 4·1만세운동 기념 공연 모습.
▲ 횡성 4·1만세운동 기념 공연 모습.

1919년 4월1일,횡성의 거리와 시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과 주민,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 같은 일상의 모습속에 시장과 거리의 상점 문이 서서히 닫히고

각지에서 모여든 장꾼들과 주민들이 시장 주변에 모여 들었다.

그러다 오후 4시쯤 함성이 울려 퍼졌다.태극기를 손에 든 이들이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지나던 군중들도 일제히 호응하며 만세를 불렀다.일본 헌병들의 총격 등 제지로 시장을 가득 메웠던 만세 함성은 어느 순간 비명과 눈물 소리로 바뀌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일본군의 총칼에 맞서 만세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4·1횡성만세운동은 원주,영월,평창 등지로 번져 도내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 4·1횡성군민 만세운동

일제 침략기 일본 상인들이 전국의 상권을 잠식해 가고 있었으나 횡성은 일본 상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등 항일 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1919년 4월1일 횡성만세운동은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영서내륙 구심점이던 횡성대교구의 주도 아래 실행됐다.서울교구의 도움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확보하고 일부는 손수 그려 배부하는 등 치밀한 준비끝에 거행됐다.

장날인 4월1일,횡성장터에는 대목장처럼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지만 경찰과 헌병은 거사를 알면서도 분위기가 고조되기를 기다렸다.군민들은 개의치 않고 서까래나 장작 막대기 등 허술하지만 나름대로 무장했다.이윽고 장터에 운집한 1000여명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삼창을 시작으로 열기는 더욱 확산됐다.

일본 헌병들이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만세 대열은 잠시 흩어졌다.그러나 주춤하던 만세 대열은 숫자를 오히려 1300여명으로 늘려 장터에서 결의를 다지는 등 만세운동은 절정에 다가갔다.

하지만 3·1공원(현재)에 매복해 있던 헌병과 보병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4명이 죽고,8명이 중상,10여명이 체포됐으며 성난 군중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산했다.군민 200여명은 이튿날인 4월2일,장터에서 집회를 갖고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밝히며 집회 허가와 체포된 이들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4월7일까지 지속됐으며 시장의 점포마다 격문을 붙이고 철시하는 무언의 저항이 지속됐다.



#만세운동 정신 보존 계승

횡성의 항일정신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 횡성군은 국경일인 삼일절에 기념행사를 갖지 않는 대신 매년 4월1일을 ‘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일’로 정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올해는 군민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는 4월1일 만세운동 재현,시가행진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마련됐다.

이번 기념행사는 ‘3·1운동 거룩한 함성,횡성에 퍼지다’란 주제로 보훈공원,시가지,문화예술회관 등지에서 열린다.특히 전통시장~보훈공원 구간에서 펼쳐지는 시가행진 및 퍼포먼스가 이색적이다.4·1만세운동 당시 의상을 착용하고 전통시장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한다.군청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기념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보훈공원 주차장에는 1919년 당시 주막을 재현,횡성한우국밥과 막걸리 등을 시식할 수 있도록 했다.여기에 전국 백일장,‘100년의 재회’란 테마의 4·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전시 및 토크쇼 등이 펼쳐진다.또 4·1만세운동을 스토리텔링화한 메모리얼 파크로 조성되는 4·1만세운동 기념공원사업 선포식도 열린다.

한편 횡성에는 보훈공원과 3·1공원(횡성읍)은 물론 1800년대말 천주교 신자들의 피난처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국내 첫 성당인 풍수원 성당(서원면),한국전쟁에 참전한 네덜란드군을 위한 네덜란드 참전기념비(횡성읍)와 오우덴 중령 충혼비(우천면) 등 저항정신이 깃든 명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태욱 tae92@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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