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데 못 간 지 여러 달 되었다.마음만 먹었으면 어디든 다녀왔을 것이다.지척에 여러 산을 두고도 벼르기만 하다가 그리 되었다.핑계거리를 찾자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주말에는 경조사도 챙겨야 하고 불쑥불쑥 예정에 없던 일이 들이닥치기가 예사다.겨우내 틈을 낼만하면 혹한이 끼어들었고,좀 풀렸다싶으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많았다.이런 게 다 게으른 마음을 합리화하는 빌미가 됐던 것이다.

이럴 때는 크게 욕심내지 말고 동네 한 바퀴라도 휘돌아 오면 기분이 한결 달라질 것이다.얼마 전 주말에도 그런 마음으로 문을 나서 집 부근 국사봉(國士峰)에 올랐다.1919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고종이 승하하자 민초들이 모여 망곡(望哭)을 올린 곳이다.해발 200m 정상에는 망국의 한이 서린 망제탑(望祭塔)을 만날 수 있다.아침운동이나 산책코스로 사랑받는 곳이지만,휴일엔 좀 더 느긋할 수 있어서 좋다.

하루하루 봄기운이 완연하고 차근차근 비문(碑文)을 읽다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역의 역사도 알게 된다.입주를 앞둔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실감한다.마을이 변해가는 모습에 기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야금야금 옛 모습과 자연이 사라지는데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주말 오후 늦게라도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자연과 마을의 속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친 김에 외곽 시가지를 가로질러 맞은편 안마산(鞍馬山)으로 향했다.1시간가량 산책으로 주말산행을 대신하기는 허전했던 것이다.산 이름은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고 춘천의 동쪽 관문에 해당한다.해발 300m 남짓 정상에 오르면 시내가 한 눈에 조망된다.눈만 들면 보이는 곳이지만 걷다보니 전혀 다른 느낌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무심코 지낸 내 고장의 자연과 역사를 답사(踏査)한 셈이 되었다.

정상에서 80세 전후로 보이는 노부부를 만난 것이 이날 나들이의 방점이 됐다.부인은 안내판과 풍경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남편은 전망대 아래쪽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그 모습은 느렸지만 오랜 습관처럼 익숙해 보였다.노부부에겐 말을 거는 것조차 방해가 될 것 같아 슬그머니 그들의 풍경에서 빠져나왔다.굳이 큰 산을 고집할 것 뭐있나 싶다.반나절 느릿느릿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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