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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칼럼]강원도 평창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김상수 논설실장

김상수 ssookim@kado.net 2019년 03월 05일 화요일
▲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지난해 2월 평창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평화 대장정이 또 한 번 고비를 맞고 있다.기대를 걸었던 지난달 베트남 2차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것이다.그동안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프로세스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왔다.올림픽 직전 까지만 해도 군사옵션이 거론되고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그러나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멀지않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동이 트기 시작하리라고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2018년 강원도라는 시공간과 올림픽이라는 거사(巨事)가 없었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또 어떤 소용돌이를 거쳤을 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찔한 상상을 하게 된다.

큰 일이 성사되는 데는 세 가지의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인화(人和)와 지리(地理),천시(天時)라는 것이다.지리적 조건이 맞아야 하고 모든 구성원의 화합이 있어야하고 하늘의 때가 있어야 한다.외적조건도 그만하면 됐고 많은 노력을 하는 데도 일이 틀어지는 것은 때가 이르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도 한다.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치를만한 지리와 인화를 갖추고도 2010년과 2014년 연거푸 실패한 것은 천시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두 번의 좌절은 실패라기보다는 천시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결과론이지만 그 실패 끝의 평창올림픽이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한반도를 충돌 일보 직전 화해와 평화의 잔치마당으로 반전시켰다.2번의 실패마저 천운이 아닌가.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그 때 그 판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누가 무엇으로 극한의 분노와 적대를 거두게 했을 것인가.정치와 이념,인종과 지역을 뛰어 넘고 불신의 벽을 무너뜨린 평창올림픽은 올림픽이상의 그 무엇이다.강원도하고도 평창 정선 강릉에서 기적을 만들었다.그 무엇도 녹여낼 용광로가 이곳 말고 또 있으랴.한반도의 분단,강원도의 분단,고성군의 분단-이렇게 이산(離散)의 아픔이 중첩된 곳이 강원도다.그만큼 평화와 통일에 대한 당위와 기원이 교직(絞織)된 땅이다.

그 옛날 연암 박지원은 중국 연행 길에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요동 땅을 밟으면서 ‘한바탕 울음을 터트릴만한 자리’라고 했다.어머니의 좁은 태속에 갇혀 지내다 넓은 세상을 마주하면서 내지른 탄성이 그의 호곡장론(好哭場論)이다.강원도야말로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우며,자연은 아직 그 원형을 해치지 않았고,인심 또한 누구든 포용할만한 그릇일 것이다.혹한의 추위를 맨몸으로 버티고 있는 대관령의 저 허정(虛靜)한 벌판이야말로 지구촌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여 한바탕 놀아볼만한 성지(聖地)가 아니었던가.연암이 요동 벌에서 신세계를 봤다면 나는 1년 전 대관령 고원(高原)에서 시대의 변주(變奏)를 예감할 수 있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지난해 4,5월과 9월 판문점과 평양을 오가며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봄이 온다’라는 깃발을 들고 그렇게 남북을 오가며 진정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불구대천 원수처럼 지내던 미국과 북한도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평화공존의 새 길을 찾기 시작했고 그 가능성을 키워왔다.지난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다시 만났다.또 다른 이정표가 되길 기대했던 ‘하노이 선언’이 불발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그러나 일진일퇴하며 오는 것이 봄이다.한반도의 새 질서는 특정시점의 결과가 아니라 도도한 과정일 것이다.평창에서 발원한 평화의 물길이 하노이를 거쳐 끝내 공영의 대해(大海)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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