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증인 누구도 소환 못해…재판부 “회피 정황 있다” 지적도

법원이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허가함에 따라, 그간 공전하던 항소심 재판도 새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보석을 허용함과 동시에 그간 출석하지 않은 증인들을 구인하기 위한 구속영장도 발부하는 방안을 거론함에 따라, 재판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가 6일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인 데에는 구속 기한까지 1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5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더디게 진행됐다.

한 차례 담당 재판부가 바뀌는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2월에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고, 정식 공판은 올해 1월 2일 시작됐다.

이날까지 10차례의 공판기일이 열렸지만, 기대만큼 심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의 증거를 모두 동의한 1심과 달리 적극적으로 증인을 부르기로 전략을 바꿨으나 주요 증인들이 줄줄이 불출석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가 채택한 15명의 증인 가운데 지금까지 법정에 나와 증언한 이는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재판이 공전하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2심 구속 기한인 4월 8일 자정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 법원의 인사로 재판부 구성원까지 모두 교체되자, 이 전 대통령 측은 “구속 기한 내에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보석을 청구했다.

재판부 역시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보석을 허가했다.

이제 더는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이 전 대통령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증인들의 소환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행방이 묘연하던 증인들을 찾아 법정에 세우고, 이들의 증언을 두고 검찰과 공방을 벌이는 과정이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항소심이 ‘장기전’으로 돌입할지 판가름 날 전망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를 입증하는 ‘열쇠’라 할 수 있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의 증언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증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그간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소환장조차 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재판부는 주요 증인들을 소환하기 위해 영장 발부 등 가능한 방안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으로 중요성과 인지도를 고려할 때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은 증인들에 대해서는 서울고법 홈페이지에 이름과 증인 신문 기일을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출석하지 않는 증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재판부 직권으로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을 발부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재판부는 검찰을 향해서도 “핵심 증인으로 볼 수 있는 몇몇 사람은 자신들이 증인으로 소환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며 “검찰도 소재 파악을 통해 제때 신문이 이뤄지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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