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혁 춘천지방법원 판사

▲ 조민혁 춘천지방법원 판사
▲ 조민혁 춘천지방법원 판사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대학 은사의 도움으로 다른 동기,선후배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으로 참여해 본 적이 있다.다만,우리 입장에서 여느 국민참여재판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는데,그것은 배심원단인 우리가 앉게 된 자리가 법대 근처 배심원단 자리가 아닌 방청석이라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정식 배심원이 아니라 그림자배심원(Shadow Jury)으로 참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그림자배심원은 정식 배심원과 별도로 구성되지만 정식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본 뒤 독립된 공간에서 해당 사건의 유·무죄에 관한 평의·평결,양형에 관한 의견을 서로 주고받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그렇지만 재판부는 그림자배심원단의 평결내용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평결내용이 판결에 반영되지도 않는데,이 또한 정식 배심원의 평결과는 다른 점이다.국민참여재판의 정식 배심원은 무작위로 일반 시민들에게 통지를 보내 법정에서 배심원 선정절차를 진행하는 데 반해 그림자배심원은 대법원 홈페이지 ‘대국민 서비스 전자민원센터 - 절차 안내(형사)’에서 실제 진행될 전국 법원 국민참여재판 일정에 따라 수시로 직접 신청하여 참가할 수 있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건은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피해자의 가방을 낚아채 달아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넘어져 다친 사안이었는데,과연 피고인에게 강도치상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대법원은 이른바 ‘날치기’와 같이 강제력을 사용하여 재물을 절취하는 경우 그 강제력의 정도가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라면 강도죄가 성립하고 그 결과 피해자에게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면 강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당시 그림자배심원단은 모두 사법연수원 입소를 앞둔 예비법조인들이었는데,피고인의 구체적인 강제력 행사의 정도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하였고 양형에 관한 의견도 제각각이었다.

그림자배심원단과 달리 정식 배심원단의 결론이 만장일치로 정해졌는지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그러나 재판부는 정식 배심원단 다수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행사한 강제력의 정도가 강도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면서,피해자의 상처가 비교적 가볍고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기억한다.그림자배심원으로서 국민참여재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참관하며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생생한 법정 공방을 마주한 것은 여러모로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누군가의 인생을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재판의 무게와 최종 판단의 부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사·변호인이 정식 배심원단 앞에서 번갈아 가며 날 선 주장을 펼치는 공방,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몸소 체험해보고 싶다면 그림자배심원으로 한 번쯤 참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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