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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계폐(分至啓閉)

김상수 ssookim@kado.net 2019년 03월 25일 월요일

한차례 눈비가 지나간 텃밭에 나갔는데 밭둑에 심어둔 매화가 곧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았다.오랜 갈증을 달래기라도 하듯 물기를 가득 머금고 마음껏 기지개를 켜는 듯 보였다.하루 이틀 지나면 나란히 서 있는 청매(靑梅) 홍매(紅梅)가 앞 다퉈 꽃을 피워낼 것이다.마치 어린아이가 저 안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걸 참고 또 참다가 마침내 어쩔 수 없어 그 긴장을 놓아버린 끝에 터트리고 마는 웃음 같은 것이리라.

엊그제 봄이 한층 분명해지고 농사일이 시작된다는 춘분(春分)이었는데 그 다음날 전국적으로 곳곳에 함박눈이 쏟아져 한 겨울을 방불케 하였다.미처 퇴각하지 못한 겨울의 잔병(殘兵)들이 최후의 일전을 벌이며 모든 화력을 쏟아 붓듯 하였다.그러나 이런 군대는 종심이 짧고 뒷심이 없어 오래 버티지 못한다.3월말 한때 눈보라의 기세는 등등했으나 두어 시간을 넘기지 못한 채 스스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었다.

살풀이를 하듯 한바탕 몰아친 눈비는 미세먼지가 뒤덮었던 대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를 대로 마른 대지를 적셨다.조바심을 내고 걱정에 걱정을 얹어가던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여유를 찾았다.춘분이 지난 뒤의 한바탕 눈비는 사람이 아무리 지혜를 짜내고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해결해 놓은 것이다.농사일에 막 시작되는 때에 알맞게 내린 급시우(及時雨)가 참 고마울 따름이다.

천문을 살피고 음양 변화를 기록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치세(治世)의 기본이다.노나라 역사서 춘추에도 정월에 관대(觀臺)에 올라 하늘을 보고 음양의 기운을 살펴서 기록하게 하는 것은 예(禮)에 합당한 일이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무릇 분지계폐(分至啓閉)에는 반드시 구름의 기운을 기록하도록 했다는 구절도 나온다.24절기 가운데 특히 계절의 변화가 뚜렷해지는 때의 기미를 놓치지 않아야한다는 것이다.

분은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으로 봄과 가을이 무르익는 때고,지는 동지(冬至)와 하지(夏至)를 말하는데 각각 음양 기운의 교차로에 해당한다.계는 입춘(立春)과 입하(立夏)로 봄과 여름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며,폐는 입추(立秋)와 입동(立冬)으로 만물이 생장을 멈추고 추수동장(秋收冬藏)에 들어가는 때다.결국 다 민생을 위한 것이다.오늘날 정치가 얼마나 자연의 기미를 살피고 민생을 염려하는지 글쎄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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