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해마다 벌초하러 고향에 들릴 때면 학창시절에 살던 동네에 들려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도 가끔 만나게 된다.그는 오래 전에 서울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소도시에 내려와 어린이와 노인들의 질병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가정의학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다.간혹 그와 함께 짧은 저녁 시간이라도 보내기 위해 병원에서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내부 상황을 무심히 보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그는 과묵하지만 찾아오는 환자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대하며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의 환자들에게는 진료비를 제대로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환자들 대부분이 단골이며 중환자가 아니라서 치료비 부담이 적고 의료보험 공단에서 지원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감면 혜택이 홍보의 목적도 있을 것이며 그 정도의 사소한 선행은 의사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으로 폄훼할 수도 있겠지만,그와 같은 봉사활동을 장기간 계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과거 한 때는 인근 대학에 의료기기를 기증해 지역사회의 의료시설 개선에 조력했고,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 의대생들의 임상실습을 지도하는 외래교수로도 활동해 고향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열성을 보였다.또 고향 모교 발전을 위한 기금 마련에도 힘썼다.무엇보다도 동네 주민,특히 영세민이나 노약자들의 건강을 돌보는데 줄곧 관심을 기울여 왔고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의료 활동으로 여생을 보낼 뜻을 비치고 있다.

내가 수십 년간 단골로 다니며 검진을 받고 있는 동네 안과에는 언제부터인가 나이든 수녀들의 출입이 늘어나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성직자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한 배려인 것 같다.물론 고령의 의사에게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시력 교정이나 고난이도 수술은 기대조차 하지 않을 것이므로 환자들 내원이 적어 수익성을 크게 바랄 수도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노년에 소일삼아 의원을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이든 주민들에게 치료하면서 안구 질환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자상한 태도는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과장광고와 과잉진료,불친절 등으로 지탄받는 일부 의사들과는 대조적으로,말없이 선행을 베풀고 있는 그들이 고향의 슈바이처로 나중에 기억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응급 업무에 따른 과로와 정신질환자들을 돌보다가 최근 사망한 중년 의사들의 숭고한 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있지만 주변을 잘 관찰해보면 자신의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을 드러나지 않게 꾸준히 돕는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이같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훈훈하고 살맛나는 방향으로 발전될 것은 분명하다.물질만능의 풍조가 심화되어가는 근래에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세계보건의 날에 즈음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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