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공포라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로 지난 4일 밤 긴급 재난안전문자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대피 안내방송을 듣고 급히 속초시내 생활체육관으로 대피한 김명순(49·속초시 교동)씨는 몸을 벌벌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저녁 9시쯤 TV를 보다 아파트 주방 창문을 통해 2㎞ 정도 떨어져 보이는 곳에서 불길이 치솟는 걸 보고 곧 불길이 잡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1시간도 안돼 매캐한 연기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긴급 대피방송이 나와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 아들과 정신 없이 빠져 나왔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안내방송에서는 가까운 교동초로 대피하라고 유도했지만 밖으로 나와보니 뜨거운 화기가 느껴지고 연기 냄새마저 심해져 공포감이 밀려와 멀리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내까지 대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4일 밤 불길이 속초시 교동,영랑동,금호동 등 도심까지 다가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설마하던 주민들은 믿기지 않는 사실에 공포감을 느끼며 김씨처럼 빈몸으로 급히 피난행렬에 나서야만 했다.

지정대피소로 거처를 옮긴 주민들은 ‘혹시라도 집에 불이 옮겨 붙지 않을까’하는 근심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날 생활체육관,청소년수련관,속초감리교회 등 지정대피소 13곳에는 총 1559명의 주민이 대피해 악몽 같은 밤을 보냈다.

특히 영랑초로 대피했던 영랑동 주민들은 냄새와 연기가 자욱해지자 다시 생활체육관으로 대피하는 이중고를 겪기도 했다.

대피소에 온 주민들에게는 은박돗자리와 담요가 제공됐으나 대부분 화마 속에 두고 온 집 걱정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낯선 잠자리가 불편한 일부 주민들은 차 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이날 청소년수련관에 대피한 안준헌(66·노학동)씨는 “8시쯤 집 뒤에 있는 닭장에 불이 붙더니 갑자기 바람을 타고 집까지 옮겨붙어 황급히 대피했다”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불면의 밤을 보낸 대피 주민들은 5일 날이 밝자 처참한 화재의 흔적에 망연자실해 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창삼 chs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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