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사람들은 바람과 눈이 무섭다.예로부터 ‘양간지풍(襄杆之風),통고지설(通高之雪),일구지난설(一口之難說)’이라는 말이 있다.양양·간성은 바람이 강하고,통천·고성은 눈이 많은데 경험하지 못하면 한 번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 20년과 순조 4년 3월 양양·간성에 큰 산불이 나 각각 민가 200채 이상과 사찰 등이 탔다고 기록됐다.영동에서 산불과의 전쟁은 일상화됐다.

그중 4월 봄바람은 태풍급이다.나무가 뽑히고 간판이 날아가는 초속 25m 이상인 경우가 많다.봄바람에 가장 취약한 것이 불이다.작은 불씨가 상상할 수 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진다.그래서 봄바람을 화풍(火風)이라고 한다.실제로 1996년 고성산불,2000년 고성 등 4개 시군 산불,2005년 낙산사까지 태운 양양산불 등이 입증하고 있다.이들 산불은 모두 4월에 발생했다.

지난 4일 영동에서 또다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이번에도 작은 불티가 초속 30m가 넘는 강풍에 날려 속초·고성·강릉·동해 등 4개 지역 530ha를 불바다로 만들었다.이번 불은 야간에 발생해 초기진화가 불가능했다.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절감했다.평생 일군 삶의 터전과 추억이 일순간 사라졌다.그나마 소방관·경찰·군인·이웃 주민과 배달원·네티즌까지 힘을 합친 것이 큰 힘이 됐다.수학여행 출발 전 실시한 재난훈련이 중학생 199명을 살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산불이 잡혀 복구작업이 시작됐다.이재민에겐 잿더미만 남아 살길이 막막하다.속초·고성·강릉·동해·인제 등 5개 시군은 특별 재난구역으로 지정됐지만,정부의 지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산사태 우려도 걱정이다.영동은 관광객 감소로 인한 제2차 피해가 예상된다.피해지로 놀러 가면 구설수에 휘말릴까 피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이는 잘못된 생각이다.영동을 방문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하루빨리 이재민이 일상생활로 복귀하고 산불 피해지에 자연의 생명이 다시 싹트기를 기원한다.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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