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지난 주말 동해안을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갔다.4일 저녁 7시쯤 고성 미시령 자락에서 발화한 불은 때 마침 불어 온 강풍을 타고 번졌다.산림과 마을을 가리지 않았고 순식간에 속초 도심을 에워쌌다.지척에 산의 대명사 설악산,북으로는 금강산을 끼고 있어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이 고장이 아니던가.불은 1시간여 만에 해안지역까지 접근하며 평화로워야 할 봄밤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성난 화마에 맨몸으로 맞서야했던 그 긴박한 시간,80㎞ 떨어진 강릉시 옥계면에서 또 발화소식 전해졌다.신당(神堂)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닥치는 대로 사람을 덮치고 가옥을 삼켰다.고속도로를 타넘고 휴게소를 집어삼키고 유명관광지 망상해변으로 번졌다.큰 요양원에 불통이 튀었으나 참사를 면한 것은 운이 좋았다.비화(飛火)는 해변의 콘도와 오토캠핑장을 유린하고 나서야 멈췄다.

직전 주말 2박3일 가족나들이를 다녀 온 곳이었다.바로 그 자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다.물 한 방울 보탤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다.이번 불로 고성에서 50대 남성 1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다쳤다.주택 200여 채가 소실되고 축구장 면적 700개가 넘는 산림이 증발됐다.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어서 더 망연하게 한다.밤새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던 국민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그날 밤 숨은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압축파일이 풀리듯 긴박한 순간 펼쳐진 휴먼드라마가 감동과 위안이 된다.호스를 메고 생업의 터전을 지키려했던 상인들,가스충전소 방호에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화약고의 폭발물을 옮기며 2차 폭발을 막은 군인과 경찰의 투혼이 더 큰 재난을 막았다.체험학습에 나섰던 학생 179명을 몸을 던져 구해낸 강원진로교육원 교직원 이야기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누구는 평생 땀 흘려 가꾼 생업의 터전을 잃었고,누구는 낙향해 제2 인생을 살아가던 소박한 꿈을 잃었다.급히 빠져나오느라 옷가지 하나 사진 한 장 못 챙긴 한 주민은 폐허가 된 집터를 바라보며 추억을 다 잃었다며 흐느꼈다.가재도구가 불타고 재산을 잃은 것 못지않게 삶의 흔적을 다 놓친 상실감 또한 클 것이다.하루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일상마저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야 한다.거센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 형성된 것이 이곳 사람들의 유전자다.오늘의 폐허가 절망이 아니라 재기의 자리여야 한다.재난에 맞섰던 용기로 복구에 나서야 한다.정부와 당국은 진화과정의 신뢰를 복구과정에서도 보여줘야 한다.재난을 당한 것은 그들이지만,극복은 국민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고통과 시련이 또 다른 삶의 동력이 되도록 국민 모두가 응원의 신호를 보냈으면 한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졸지에 폐허에 선 이들에게 도종환의 ‘폐허 이후’가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어려운 일을 당할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의 저력이다.전국 곳곳에서 이웃의 재난을 안타까워하고 고통을 함께 하려는 온정이 이어진다.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스스로 좌절하고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재난이 우리에게 큰 시련을 주지만,그것을 딛고 일어서면 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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