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고 장기간 근무하는 지역법관을 ‘향판(鄕判)’이라고 한다.‘서울 판사’라는 뜻인 경판(京判)의 상대어로 대다수의 법관이 수도권 근무를 희망하기 때문에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인사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지역법관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후 10년 더 연장할 수 있어 재판의 효율성과 판결에 대한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하지만 혈연·지연·학연 등에 얽매일 가능성이 높고 전관예우의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다.

부산·경남지역에서 ‘향판’으로 30년 가까이 근무하다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된 문형배 판사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헌법 정신 속 지방분권’을 역설해 주목을 받았다.그는 “만일 헌법재판관에 임명된다면,생의 대부분을 지방에서 살아온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헌법에서 선언한 지방분권의 가치가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안정을 이루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지방에서 살아보니 우리나라의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의 뜻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많았다”며 “헌법의 의지가 법전의 장식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넘기는 분권이 이루어져야 하고,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 재판관의 목표를 ‘지방분권’으로 내세운 ‘향판’의 전례없는 인사말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그동안 수많은 헌법재판관 후보들이 청문회에서 ‘헌법의 수호’를 다짐했지만 문 판사처럼 헌법에 보장된 지방분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후보는 없기 때문이다.문 판사의 의지대로 헌법 속에 지방분권이 녹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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