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희 강릉 문성고 교사

3월 학기 초부터 시작된 아이들과의 진학상담이 4월에도 이어지고 있다.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대학과 학과가 결정돼 다행이었지만 아이 중 일부는 아직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지 않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5교시 쉬는 시간,한 여학생으로부터 긴급 상담 제안을 받았다.상담을 청하는 아이의 표정이 워낙 심각해 상담 제안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 아이는 학기 초 나눠 준 생활기록부를 꺼내 놓으며 현재 자신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있는지를 다짜고짜 물었다.“선생님, 제 성적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아이는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인즉슨 2학년 2학기 때까지의 교과 성적만으로 도저히 대학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부모님이 자신에게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할 것을 주문했다고 했다.심지어 심한 꾸지람은 3학년에 올라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우선 그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교과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그 아이의 교과 성적은 부모님이 화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저조했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아이의 생활기록부 비교과 내용(봉사활동,진로활동,자율활동,수상,교과 세부 특기사항 등)은 생각보다 잘 적혀 있었다.문득 이것이 이 아이에겐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교과는 이 아이가 목표하는 대학에 합격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지만.

지난 3월 학부모 총회 때,한 학부모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던진 말이 생각난다.“선생님,제 아이가 성적이 안 좋은데 수시모집 지원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아직 우리 주변에는 교과성적이 좋지 않으면 수시모집엔 지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진학담당교사들은 기회가 되면 학부모에게 수시모집 전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폭넓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나무(교과 영역)만 보고 숲(비교과 영역)을 못 보는 식’의 수시모집 이해로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또 학생과의 상담도 중요하지만 학부모와의 상담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 끝난 뒤 시일 내 부모님과의 상담을 약속하며 그 아이를 돌려보냈다.2학년 때까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그 아이가 3학년에 올라와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다.수시모집 전형을 잘 알지 못한 부모의 말에 하마터면 대학을 포기할 뻔했던 그 아이는 한 가닥 희망을 얻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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