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각은 1950∼1970년대 우리나라 3대 요정 중의 한 곳으로 유명했다.대원각 주인인 고(故)김영한(1916∼1999)은 16살에 기생이 됐다.미모도 뛰어났지만 문재도 출중했다.1936년 시인 백석(1912∼1996)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3년간 동거했으나 백석이 만주로 갔다가 38선에 막혀 북한에 머물면서 영영 생이별 한다.김영한은 1955년 서울 성북구 인근의 2만여 평의 대지에 대원각을 세워 1980년대까지 운영했다.

1987년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시주를 밝혔으나 거절당했다.10년 동안 법정스님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1997년 그녀의 법명(길상화)에서 따 온 길상사(吉祥寺)를 세우게 된다.당시 대원각은 시가로 10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길상사 건립 2년 후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백석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백석문화상을 제정하는 등 옛 연인을 그리워했다.그녀가 죽기 전 한 기자가 “평생 모은 재산이 아깝지 않으냐”라고 묻자 그녀는 “1000억 원도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답했다.시(詩) 한 구절이 1000억 원 이상 된다니….

그러나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이다.고용정보원이 며칠 전 2017년 우리나라 직업 연봉 랭킹을 발표했는데 시인이 가장 낮았다.시인의 연봉은 1000만 원.패스트푸드 점원(1650만 원)보다 적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우리나라 최고 연봉인 국회의원(1억4000만 원)의 7% 수준이다.그나마 스트레스가 가장 낮아(1.63) 돈이 없어도 영혼만은 자유롭다.

시인 이생진은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가난을 훈장처럼 달아주고,참아가라고 달랜다.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 처럼,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라고 했다.시인에게도 가난은 시련이다.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은 1000만원의 가치가 있다.봄은 시(詩)읽기 좋은 계절이다.무명 시인이 쓴 시집이라도 한 권 사서 읽어 보자.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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