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남 시인

전철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밖을 내다보면 철로 변에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있다.민들레는 키자 작다.키가 작아서 거의 땅에 붙어있다.하지만 민들레들은 키가 큰 해바라기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윗자리를 쳐다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훈장 같기도 하고 처녀들 브로치 같기도 하다.어릴 때 뛰어다니다가 상처를 입으면 어머니는 민들레를 찧어서 약으로 발라주기도 했다.그런 민들레들이 철로 변에 지천으로 늘어져 있다.어쩌면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고 싶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기차 역장이 민들레를 보고 말을 건넸다.‘너희들 기차 타고 어디로 가고 싶은 게로구나? 하지만 너희들은 키가 작아서 기차를 탈 수 없단다.’민들레들은 그들만의 생각이 따로 있었다.기차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바람이 불면 낙하산을 펴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바다를 건너 먼 섬으로 가서 자기들의 영토를 만들고 왕국을 세워 사는 게 꿈이었다.이 꿈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이 민들레들이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에서 이상국을 세웠던 ‘율도국’에도 터전을 잡지 않았을까.허균의 스승이 이달(李達)이다.이달은 시재(詩才)였으나 서자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어쩌면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스승 이달을 모델로 삼았는지도 모르는 일.

박완서 소설가의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에 보면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할머니가 둘이나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고령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이 소설의 주인공 어린이는 고민에 빠지고 할머니들의 자살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그게 민들레꽃 화분을 옥상 베란다에 두는 것이었다.이 민들레의 강한 자생력을 보고 주인공 아이도 자살하려고 한 마음이 부끄러웠던 것이고 그 후부터 자살사고는 없어졌다는 이야기다.민들레는 옥상 시멘트벽에 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생명력을 가졌다.어느 하늘 밑에도 민들레는 살고 민들레는 인간에게 삶의 의욕을 준다.

오늘날 고령사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자식들에게 미안하고 나라에 부담을 준다.인구 감소와 저 출산이 남의 일이 아니다.인구가 지나치게 늘어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 정책이 옛일이 된지 오래다.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자가 늘어간다.민들레는 인간의 저출산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오늘도 민들레는 낙하산을 타고 무수히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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