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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눈]고성 성천마을의 검은 비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남궁창성 cometsp@kaod.net 2019년 04월 29일 월요일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4월26일 오전.고성 하늘은 산불 이재민들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동해고속도로 속초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 군도를 따라 토성면 성천마을로 가는 길에는 찬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차창 밖으로는 검게 불 타버린 농가주택,레미콘 공장,농기계,펜션,소형 트럭 등의 잔해들이 전쟁의 상흔처럼 여기저기 나뒹굴었다.사계절 푸르른 기상을 자랑하던 금강송들도 화마에 그을려 제 빛을 잃은채 누런 주검으로 청록의 봄을 대면했다.농번기를 앞두고 한창 바빠야 할 들녘이지만 논과 밭은 텅 비어 있었다.여기저기 ‘삶의 터전 누가 앗아갔나? 서러워서 못 살겠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문재인 대통령 방문 소식을 접한 성천마을은 술렁였다.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재민들과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하나 둘 임시 거처인 조립주택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시커먼 구름이 가득한 하늘아래 빗줄기는 그칠줄 몰랐다.불 타버린 집터에 마련된 보고장 천막 안까지 찬 바람과 함께 거센 비가 휘몰아쳤다.군청 공무원들은 흙을 연신 퍼다 날라 물 구덩이를 메우며 울퉁불퉁한 보고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율곡부대에서 나온 고급 장교는 보고장 천막을 들락날락대며 대통령 보고문안을 중얼중얼 외웠다.보고장 앞에서는 삭발을 한 이재민이 X 표시를 한 흰 마스크를 쓴채 비를 맞아가며 ‘정부는 선 보상에 앞장서라!’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오전 11시15분 성천마을을 찾은 대통령은 보고를 뒤로 물린채 찬 빗속에 떠는 이재민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베트남에서 시집 온 도티 구 잉(36)씨는 생후 한 달이 갓 지난 아기를 품에 꼭 안은채 눈물만 흘렸다.정작 대통령 앞에 섰지만 말이 서툴러 딱한 처지를 호소할 수 없었다.한 아주머니는 불에 무너져 내린 개울 건너 집을 가리키며 울먹였다.“돌아가신 남편이 35년간 해군에서 복무해 모은 돈으로 지은 집을 잃었습니다.도와주세요.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세요.” 얼마후 보고를 마친 뒤 다음 행사장으로 떠나려는 대통령 앞을 가로막은 한 할머니도 눈물을 글썽였다.“대통령님! 집이 다 탔어요.부탁드리러 나왔습니다.대통령님 보니까 눈물이 납니다.부탁드립니다.” 문 대통령은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할머니를 안아 드리며 어깨를 다독이는 것으로 눈물 가득한 호소에 답했다.

20여 분간 진행된 보고와 격려가 모두 끝난 뒤 대통령을 따라 장관,도지사,군수가 검은색 승용차들을 타고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귀한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성천마을은 다시 텅 비어갔다.철 모르는 빗줄기만 다시 굵어져 하늘을 가렸다.공무원들은 보고장 철수 준비에 다시 바빠졌다.귀가 안들려 대화가 어렵다는 이재민 할아버지는 서울서 내려왔다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임시 숙소로 돌아갔다.대통령 보고동안 시위를 접었던 1인 시위 이재민도 빗속으로 멀어져 갔다.100세대 가운데 58세대가 산불로 집을 잃은 성천마을은 다시 새도 날지 않고 인적도 끊겼다.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나는 기자의 차창 밖으로 한 할머니가 잿더미로 변한 빈 집터를 떠나지 못하고 찬 비를 맞으며 홀로 맴돌고 있었다. -고성 성천마을에서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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