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혁 춘천지방법원 판사

당신이 판사라니,무슨 말일까.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사건의 유·무죄 판단만큼,혹은 그보다 더 양형이 어렵다.” 양형이란 법원이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하면서 그 형의 종류와 양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작년 한 해 동안 직접 형사재판을 담당해본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양형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양형이 어려울까.우리나라 형법은 제51조에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1.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2.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4.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수많은 형사사건 중 죄명이 같은 사건이라도 개개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 범행 당시는 물론이고 그 당시를 전후한 구체적인 상황과 피고인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물론 법정형과 양형기준에서 형의 상한과 하한은 정해놓았지만,위와 같은 이유로 판사가 해당 사건에서 유죄의 판단을 하더라도 그 형을 정하면서는 하나의 사건에서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참 많기에,양형은 쉽지 않다.일부 언론에서 판사들의 양형이 제각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결론을 정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판사들 고민의 양은 제각각이 아닐 것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당신이 판사라는 말이 무엇일까.위와 같은 양형에 대한 고민을 국민들도 함께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바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는 “당신이 판사입니다”라는 양형 체험 프로그램이다.인터넷 검색창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를 검색해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메인 화면에서 바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살인,절도,강제추행,사기 범죄에 대한 양형을 체험해볼 수 있다.먼저 실제 사건에 기초한 해당 범죄의 사건 개요만을 보고 형을 한 번 정해본 다음,가상의 판사가 되어 사건 영상과 피고인,변호인,검사의 구체적인 공방까지 보고 피고인에 대한 적절한 양형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최종결론을 정하는 방식이다.또 실제 같은 사건에서 선고된 형량과 비교해보며 관련 형법과 양형기준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다.

살인범죄와 절도범죄의 양형 프로그램 체험을 마친 참여자만도 2019년 3월 기준으로 약 2만9000여 명에 이르는데,통계를 내보니 사건 개요만 보고 극단적 양형을 선택했던 체험자가 양형 체험을 통해 고민한 후에는 더 합리적인 양형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가령 살인범죄의 경우 프로그램 체험 전 9%만이 집행유예를 선택한 반면 체험 후에는 39%가 집행유예를 선택하는 등 체험자들이 양형 체험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는 양형 선택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당신이 판사입니다’에 참여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양형절차와 양형기준,양형 결정 과정에서 고려돼야 할 여러 요소들에 대해 경험해보고 양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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